한 번의 응징이 절실하다.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국가라는 틀 안에서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살려면 개인 간의 믿음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데, 요즘은 그 믿음과 신뢰에 자꾸 금이 가는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심해야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 있다. 두 명의 참가자는 협력과 배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둘 다 협력을 선택하면 각각 3점씩 받는다. 상대방이 협력을 선택했을 때 내가 배반을 택하면 나는 5점, 상대는 0점을 받는다. 둘 다 배반을 하면 각각 1점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협력보다는 배반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협력을 할 경우, 나는 5점을 얻고 상대는 0점을 얻는다. 상대방이 배반을 해도 나란히 1점씩 얻는다. 문제는 상대 경기자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므로 무조건 배반을 선택할 것이다. 결국 둘 다 협력할 경우에 얻는 3점 대신 1점밖에 못 얻는다.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결론이, 두 사람 모두에게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이게 ‘죄수의 딜레마’인데, 인생이 이런 딜레마라면,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1984년 미시간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로버트 액설로드는 전 세계 게임이론가, 컴퓨터공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심리학자 등을 상대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공모했다. (중략)
이 리그전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얻어 승리한 전략은, 제출된 전략들 중 가장 간단한 형태의 전략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Tit for tat, 이하 TFT) 전략이 그것이다.
TFT 전략은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1. ‘협조’로 게임을 시작한다. 2. 게임이 반복되는 경우, 상대방의 이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다. 즉 상대방이 바로 전회에 ‘협조’를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협조’를 하고, 상대방이 전회에 ‘배신’을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배신’을 한다.
다시 말해 TFT 전략은 선하게 게임을 시작한 후, 상대방의 호의에는 호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대응한다는 ‘상호성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 뿌리와 이파리)> 92~93쪽 요약

이 실험의 과정을 기록한 ‘협력의 진화’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를 보면, 협력이 강제 없이도 자연적으로 창발한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경북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최정규 교수의 책이다. 경제학이란 이기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다.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이기적 선택보다 이타적 선택이 경제학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정치학자(로버트 액설로드)와 경제학자(최정규)가 이구동성으로 협력이 유리한 선택이라는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협력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고, 그걸 되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처방도 있다.

팃포탯 전략이 살아남는 조건은 단순하다. 내가 ‘협력’을 선택했을 때, 상대가 ‘배반’이라는 카드를 내밀면, 다음엔 나도 ‘배반’이라는 카드로 상대를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배신에 무조건적으로 협력만 계속하면 나는 ‘호구’가 되고, 상대방은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승자로 만든다. 이기적인 배신자를 승자로 만들면 주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모두가 승자의 전략을 따라할 테니까. 모든 구성원이 배신의 전략을 카피하면 결국 그 사회 전체가 패자로 전락하게 된다.

‘팃포탯 전략’은 배신을 한 상대방에게 배신으로써 응징한다. 상호 배신이 서로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려준 후, 상대방이 협력으로 돌아서면 바로 다시 협력한다. 절도 있는 응징을 위한 4가지 조건.

‘우선 상대가 협력하는 한 거기에 맞춰 협력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 상대의 예상치 않은 배반에 응징할 수 있을 것. 셋째, 상대의 도발을 응징한 후에는 용서할 것. 넷째, 상대가 나의 행동 패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동을 명확하게 할 것.’
‘협력의 진화’ 43쪽

국가의 재난 구호 시스템을 믿고 구조를 기다렸던 ‘세월호’ 속 아이들, 제조사의 양심을 믿고 제품을 구매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 이들의 믿음을 배신한 것은 누구인가? 국민들 가슴 속 깊숙이 불신을 심어놓은 이러한 배신에 대해서는 청문회라는 형태의 한 번의 응징이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복구되지 않으면, 강남역 화장실을 가는 것도 불안해지고, 섬마을 주민이 따라주는 술도 무서워진다. 모두의 신뢰가 배신당하는 세상이 오니까.

지난번 총선의 결과는 여당에 배신당한 보수층이, 야당에 배신당한 일부 지역이, 청와대에 배신당한 유권자들이 내민 응징의 카드다. 이 한 번의 응징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국가의 협력 시스템이 되살아난다. 협력의 시대를 꽃피우려면 배신에 대한 한 번의 응징이 절실하다.

  • J S Park

    너희 스스로에게도 ‘한번의 응징’을 실시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천안함 사건의 신상철, 세월호 사건의 설훈과 김어준. 이 놈들이 무슨 짓을 했고 하고 있는지 한번이라도 문제의식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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