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돼지의 시간이여, 안녕.

성격이 정반대인 두 친구가 있다. 매사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A와 항상 까칠하고 부정적인 언사를 보이는 B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둘의 의견은 항상 양극단으로 갈린다. 고위직 인사가 성추문에라도 휩싸이면 A는 안타까워했다.

“아이고, 한번 실수로 평생 쌓아 올린 명예를 잃었으니 지지리 운도 없네.”

B는 그럴 때 꼭 시비를 건다.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게지.”
“무슨 소리야?”
“확률의 문제야. 평생 처음 한 짓이 걸리기가 쉽겠냐? 한두 번 했다가 문제가 없기에 그 짓이 버릇이 되었는데, 결국 사달이 나기가 쉽겠냐? 초범이 재수 없이 걸릴 확률보다는 상습범이 딱 걸릴 확률이 훨씬 더 높아.”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교육부 나향욱을 두둔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고, 말실수 한 번에 된통 걸렸네.”

그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신분제 사회라는 확고한 신념을 펼쳐 보였다. 구의역 사고 청년에 대해 물은 기자에게 “어떻게 그게 내 자식 일처럼 생각되나? 그건 위선이다.”라며 따지기까지 했다. 이런 얘기 처음 하는 사람이 그처럼 확신을 갖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을 만났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밀한 호응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 때문에 나향욱은 그릇된 확신에 빠졌다. 이번 사건은 교육부 고위직 간부의 민낯을 까발린 한편, 1% 가진 자들의 지배에 대해 감시자가 아니라 동조자로 여겨지는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언젠가 B가 술자리에서 판검사 중에서 유독 부잣집 사위가 많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사법고시 패스하면, 부잣집에서 혼담이 줄지어 온다면서? 판검사가 되면 명예와 권력을 누릴 텐데 굳이 재물까지 챙겨야 해? 고시 뒷바라지해준 가난한 연인과 결혼해서 청빈한 법관으로 평생 사는 시대는 끝난 건가?”

이번에는 A가 끼어들었다.

“판검사들 월급이 그리 많지는 않잖아? 부잣집 사위가 되면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할 수 있지. 범죄자들이 건네는 검은돈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보다 법관들이 경제력을 갖춘 처가의 후원을 받는 편이 사회 전체로 보아 낫지 않아?”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으로 이름을 날린 시골 수재 우병우를 보자. 돈 많은 처가 덕에 청렴한 대쪽 검사의 길을 간 줄 알았더니, 처가와 게임업체 넥슨 간 부동산 매매 과정 개입, 처제의 조세도피처 국적 취득, 처가의 농지법 위반 등등 처가와 관련한 숱한 의혹이 쏟아진다. 부잣집에 들어간 가난한 수재가 결국 부잣집 재물을 불려주는 마름이 된 이 슬픈 현실.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 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을 보면, 우리 사회는 ‘썸바디 vs 노바디’의 신분주의 사회란다. 대학원생을 몸종처럼 부리는 교수, 레지던트에게 발길질을 하는 의사, 노동자를 몽둥이로 패는 재벌 2세, 아무런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하는 방송사 임원 등등. 썸바디는 노바디에게 얼마든지 무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처럼 행동한다.

‘신자유주의-그 핵심은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고, 노동에게 극도의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다-는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신분주의의 확산을 도왔다. 당신이 비정규직이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면, 직장에 노조가 없거나 있거나 마나 하다면, 해고되었을 때 다시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맞서기 어렵다. (중략)
지위와 특권을 분배하는 구조를 내버려둔 채,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모욕이라는 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오늘날의 신분주의의 배후에는 경제적 약자에게 굴욕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자본가와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가, 언론인, 교수, 법관들이 있다.‘

‘사람, 장소, 환대’ 164~166쪽 요약정리

나향욱과 우병우는 우리 사회 가장 깊숙한 환부를 들춰 보인다. 나향욱은 파면이라는 징계를 받았지만, 그의 죄는 말실수가 아니라 기밀 누설이다. 우리 사회의 내밀한 작동 시스템을 경솔하게 발설한 죄. 이제 나향욱이 잘렸으니 문제가 사라진 건가? 진짜 문제는 행정가와 언론 그리고 법관들이 자본가를 비호하는 구조다.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 단체에 가입하고,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독립 언론을 후원하고, 개개인의 노력만이 잘못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모욕을 받으면 화를 내고, 화가 나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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