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곧 실력인 세상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길흉을 점쳤다. 별 헤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천문학자 친구가 있는데, 그는 점성술보다 관상학에 조예가 깊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재주가 있어 대학 다닐 때, 천문학과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법관을 하면 딱 맞을 사람이 엄하게 이공계에 와서 고생하고 있구나.”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훗날 법관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후, 동창회 모임에서 친구의 고시 도전기가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 너는 천문학과 나와서 사시 볼 생각을 다 했냐?”
“운이 좋았지. 나의 적성을 알아봐 준 사람을 만났거든.”

고맙다는 말에 천문학 박사가 된 친구가 말했다.

“그건 운이 아니라 니 실력 아냐?”
“재능을 알아봐 주는 친구를 만난 것도 운이지.”
“그게 어찌 운이냐.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공부한다고 사시에 다 패스하는 것도 아니잖아. 결국은 열심히 공부한 니 실력 덕분인거지.”
“책을 본다고 누구나 법 조항을 외울 수 있는 건 아냐. 그런 머리를 타고나는 것도 운이야.”

생각해보면 세상만사 다 운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만 봐도,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은 다 천하에 대운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부모 잘 만난 덕에 재벌 2세가 되거나, 공부하는 머리를 타고 난 덕에 관직에 오르거나.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노력한 덕분에 성공했다고 믿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공은 타고난 운이 따라야 한다. 아니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특성이 운을 탄다는 것 아닐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은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일하며 살았다. 불임이라 아이가 없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질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몇 가지 불운이 겹치면서 그는 가난한 독거노인이 된다. 영화를 보면, 영국같이 잘 사는 나라에도 가난한 노인이 많다. ‘노후 파산’이니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등의 책을 보면, 이웃 나라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고용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가 흔들리고, 가족의 형태가 변하면서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면서 전후 경제성장을 이끈 선진국의 노인 세대가 이제는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선별적 복지 제도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무능함을 전시하고, 자신의 불운을 과장하고, 외롭고 불행한 인생임을 증명해야 복지 수급을 받을 수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드러났듯, 밥을 굶는 아이가 밥을 먹기 위해 부모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가난한 노인이 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배고픈 고통도 겪어 봐야 안다. 운 좋게 부잣집에 태어나 굶주림을 모르고, 공부하는 머리를 타고나 실패의 좌절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라의 정책을 맡기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민의 감시가 살아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을 주도하는 세상이 오면, 실업이라는 불운을 겪게 될 이들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지식과 부의 편중이 심화되는 세상에서 희망은 기본소득이다. 직업이 있거나 없거나,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몸이 아프거나 말거나,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이 운이라면, 그 운의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 아닐까?

조금 더 운이 좋은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성과를 나누고, 운이 조금 부족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필요 없이 도움을 받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이라고 믿는다.

  • 박지훈

    논스톱 김민식 PD님 맞으시죠~?ㅎㅎ 칼럼이 시트콤처럼 편해서 좋습니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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