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

취재를 하고, 리포트를 만들다 보면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리포트는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으로 도래할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취재원들의 사연 중 몇 가지 다뤄야 할 부분을 충분히 못 다룬 것들이 있다. 특히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아들을 잃은 아버지, 이만우 씨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10월 5일 이후 이만우 씨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각, 빈소에 모셔 놓은 아들의 영정 사진을 조용히 내린다. 영정을 종이 가방에 조심스럽게 챙겨 담고 장례식장을 나선다. 장례식장을 나서 3분만 걸으면 자신과 아들이 일했던 회사 정문이 나온다. 울산 현대중공업이다.

오전 6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이 씨는 이곳에서 아들 영정과 함께 선다. 새까만 바탕색에 하얗게 ‘고 이정욱 하청노동자의 죽음 정몽준이 책임져라’고 쓴 현수막과 함께다. 주변엔 ‘내 아들 이정욱을 살려내라’, ‘정몽준은 산재사망 책임져라’고 쓴 만장을 든 동료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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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또래 사원들이 바쁜 출근길을 재촉하며 이 씨 앞을 무심히 지나친다. 회사 측 보안 직원들은 이 씨 일행이 성가시다. 그를 만나러 온 기자도 성가시다. 이 씨를 담던 카메라가 회사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자 즉각 반응한다. “카메라 돌리세요”, “이쪽은 찍으면 안됩니다”

이 씨를 찍는 거라는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다. 어쨌든 회사 쪽은 안된단다. 촬영 기자를 은근슬쩍 밀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주변엔 얼굴이 익은 경찰이 몇 보이지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회사와 경찰, 동료들의 무관심 속에 이 씨는 이미 열흘 넘게 매일 아침 회사 정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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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지난 9월 2일 현대중공업 4도크(선박 건조, 수리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한달간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사고 뒷수습에는 하청업체 협의회와 아들이 소속됐던 업체 대표가 나섰다. 하청업체 대표가 사과를 했고, 현대중공업은 사과 대신 10월 4일 이 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하청노동자인 아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대신, 정규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한 것이다. 이날은 이 씨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한 날이기도 했다. 다음날 아들은 5명의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다.

현대중공업에선 지난해 10명, 올해 정욱씨까지 3명이 업무 중 사고로 숨졌다. 이들 모두는 하청노동자였다.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날 때 마다 현대중공업은 항상 뒷전에 물러나 있다. 하청업체 대표나 협의회 차원에서 유족과 협상을 하고 사고를 수습한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전한 사람 대신 옆 자리에 동석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꼴이다. 이 씨가 매일 아침 현대중공업 정문 앞을 찾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동승자가 아니라 운전자가 책임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만우 / 고 이정욱 씨 아버지
신호수나 크레인 기사들이 모두 직영(현대중공업 정규직) 사람들 이거든요. 제가 화가 나고 하는 부분은 막말로 지나간 행인을 차가 쳤는데, 차주가 책임을 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모르쇠 일관하면서 업체 협의회 사람을 대표로 보내서 협상 하자는데, 얼토당토 안해요.

한 시간 가량 집회를 마치고 다시 영정은 종이가방에 넣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면, 이 씨는 가장 먼저 영정을 다시 빈소에 모신다. 부인도, 딸도, 며느리도 할 수 없는 이 씨의 일이다. 아들 영정 앞에선 이 씨는 매일 같은 기도를 한다.

이만우 / 고 이정욱 씨 아버지
저는 매일 영정 사진 앞에서 우리 아들한테 기도합니다. 니 빨리 눈감고 승천할 수 있도록 외면하는 저 원청 회사 새끼들 진짜 욕하고 싶다. 아버지 끝까지 싸워서 니 원 풀어줄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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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종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칠 즈음, ‘안치소’를 언급하며 아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면선 그도 울컥 치솟는 눈물을 막진 못했다.

이만우 / 고 이정욱 씨 아버지
다음날 안치소로 옮기고… 저녁 정도 됐을 겁니다 그 장기 기증 받은 다섯 사람이 새 생명에다가 완쾌까지 했다고… 그거 되게 기뻤어요. 우리 가족한테 고맙다 이야기 했어요. 너무 대단한 일했다. 다섯 명이, 다섯 명 살았다는 데 우리는 큰 의미를 가지고 살자. 억울하게 죽었지만은 그래도 새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게, 큰 일을 했다. 참 기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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