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은 당신의 심장을 저격할 것이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700만 관객을 돌파해 쾌속질주 중이다. 1,000만 관객 달성은 시간문제 같다. ‘암살’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겐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마저 버린 순국선열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익히 알다시피 아시아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시대의 선두주자는 단연 일본이었다. 일본은 1853년 근대적 의미의 개항 이후 욱일승천의 기세로 국력을 키웠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 만주로 뻗어 나갔다. 한일합방은 1910년에 일어났지만, 쇠잔한 조선이 일제의 사실상 식민지가 된 건 훨씬 전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에 더욱 힘이 세졌고, 전쟁을 통한 대외팽창전략을 노골적으로 추구했다. 그 와중에 군부의 힘은 제어불능의 상태로 치달았다.

‘암살’은 한일합병이 일어난 지 23년이 지난 시점,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오족협화(五族協和, ‘일본인, 조선인, 한인, 만주인, 몽골인이 서로 협력하며 화합하자’는 뜻으로 일제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의 건국이념)의 기치 아래 만주국을 세운 지 1년이 지난 시점을 주무대로 한다. 그건 일시동인(一視同仁, ‘일황은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과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의 이데올로기 아래 식민지 조선이 식민지 모국인 일제에 동화되던 시기였음을, 일제가 말 그대로 태양이 떠오르는 기세로 아시아를 집어삼키던 시기였음을 의미한다.

그 절망의 시대, 그 암흑의 시대에 3인의 독립군[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분),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은 김구와 김원봉의 명령을 받고 경성에 잠입해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를 암살하려고 한다. 그 반대편에 변절자 염석진(이정재 분)이 있다. 3인의 독립군은 이중간첩 염석진의 제보에도 불구하고 타겟 제거에는 성공하지만, 안옥윤만 살아남는다.

3인의 독립군이라고 해서 제 실존의 가치를 모르지 않았을 테고(“경성에 가면 뭐가 하고 싶냐”라는 염석진의 물음에 안옥윤은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라고 답한다), 일제의 막강함을 모르지 않았을(춘원 이광수조차 훼절의 변명으로 ‘일제가 망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도 염석진은 이광수와 똑같은 말을 한다)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주보다 소중한 제 생명을 정작 자신들은 아무런 덕도 보지 못한 민족의 해방을 위해 던졌다. 그들이라고 왜 망설임과 두려움과 미련이 없었겠는가? 나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신의 사를 버리고 자기를 던진 독립투사들에게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의 끝을 발견한다.

대한민국 최대의 불행은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이다. 일제하에서는 기껏해야 부역자 수준이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해방된 조선에서는 나라의 주인이 됐다. 독립운동가에서 일제 헌병 간부로 변신한 염석진이 반민특위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유유히 걸어가는 장면, 염석진 곁을 지나가는 시위대가 “반민특위 해체”, “북진통일”을 외치는 장면은 신생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건 정의의 완벽한 패배, 도덕의 철저한 파괴, 역사의 지독한 퇴행을 의미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와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에 대한 몰수는 고사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신생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 순간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규정짓는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다. 해방과 건국의 3년 동안 대한민국을 사실상 장악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뒤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을 통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주인이 됐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건국 직후의 대한민국과 다른가?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제 나라와 가족까지 주저 없이 버리는(강인국의 부인은 강인국에게 “이것도 나란데 일본은 전쟁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이 나라를 삼켰다… 그건 누가 갖다 바친 거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일갈한다)강인국 같은 자들,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인 염석진 같은 자들이 지금도 대한민국의 주인이 아닌가? 만주군 장교를 하던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인 나라, 친일반민족행위 의혹이 있는 선친을 둔 사람이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리고 완전히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나라인 것이다.

‘암살’의 엔딩 장면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 경성에 잠입해 독립군의 비밀거점인 아네모네 주점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어색하게 춤추며 웃던 안옥윤은 동작을 멈추고 처연한 눈길로 정면을 응시한다. 나는 그 눈길에서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개별적 실존의 짙은 고뇌를, 사적 행복보다는 대의에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세계사의 난폭함에 대한 두려움을, 해방된 민족이 걸어가게 될 피투성이 미래를 읽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암살’을 보길 바란다. 이 영화는 사적인 관심사와 사적 행복에 경도된 당신의 딱딱한 심장을 저격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당신의 심장에서는 피가 흐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 가을밤

    ‘암살’이 ‘필요한 영화’일 수는 있겠지만 ‘연평해전’을 ‘적대할 영화’로 규정지어야 ‘더 필요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뉴스타파에 객원필진으로 있는 프로페셔널 영화비평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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