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역사전쟁을 벌이는 까닭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전쟁에 돌입했다. 가뭄에 전국이 타들어가고, 임차인들이 전세난민이 돼 변두리로 쫒겨다니고, 세월호 유족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마를 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단해 나라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편가르기와 분열책이 박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통치술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이슈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걸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더해, 자신이 가진 역사관을 역사해석의 유일한 기준으로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건 어제 있었던 프로 야구 경기의 스코어 같은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신이 지닌 역사관이 유일하게 올바른(?)역사관이고, 자라나는 학생들도 자신의 역사관을 따라야 한다고 난폭하게 강요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역사관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깊이 경도돼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 메인스트림과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역사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 메인스트림과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한국현대사 인식 및 가치관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인간의 존엄성 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이다. 문명국이 미개한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 엘리트가 미개한 대중을 다스리는 것을 자연의 이치로 간주하는 우승열패의 신화가 이들의 신앙이며, 물질적 풍요만이 이들이 사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서 경제성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언제라도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 뉴라이트 지식인과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대부분의 생각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폄훼(貶毁)도 이들이 저지르는 대표적 오류 가운데 하나다. 이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대략 이럴 것이다.

‘비록 일제가 선의를 가지고 조선을 병탄한 것은 아니지만, 일제가 아니었다면 조선 스스로 근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근대의 제도와 과학기술은 일제에 의해 이식, 착근된 것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게 역사의 비정함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됐고, 건국의 아버지는 이승만이다.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고생은 했지만 신생 대한민국에 기여한 것이 없다’, ‘박정희라는 불세출의 계몽군주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가두고 때리고 강제로 이끌었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중화학공업화가 가능했지, 그대로 뒀으면 엽전들이 아직도 가발이나 만들어 팔 것이다. 박정희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산다’

뉴라이트 지식인 등은 ‘우리 힘으로는 근대화도, 건국도, 산업화도 불가능했다. 일제가, 미국이, 이승만이, 박정희가 근대화와 건국과 산업화를 가능케했다’고 굳게 믿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주체성을 불신한다. 뉴라이트 지식인 등은 한국현대사에 빛과 어두움이 있었다는 사관을 자학사관이라며 매섭게 비판하곤 한다. 재미있는 건 정작 이들이야말로 자학사관의 담지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일제가 아니었으면 근대화가,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건국이,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경제성장과 중화학공업화가 불가능했다는 생각이야말로 자학사관의 정수다.

뉴라이트 역사관에서는 물질적 풍요와 경제성장만이 역사 발전의 유일한 기준이다. 따라서 일제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식민지배를 했건, 이승만이 무고한 동족들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도륙하고 독재를 했건,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헌정을 파괴하고 유신이라는 이름의 유사파시즘 체제를 구축해 종신통령이 되려고 했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승자(?)가 저지른 학살과 고문과 인권유린과 착취에 관대하다. 우승열패의 세상에서는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역사 인식과 가치관을 철저히 신봉한다는 사실이다. 현대사에 대한 도착적 인식, 법과 원칙과 상식에 대해 끝도 없이 반복되는 박근혜식 이중 잣대는 박 대통령의 가치관과 역사 인식이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초헌법적, 초법적 메시아였던 박정희가 다스리던 유신시절을 항상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하게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 국정화 투쟁에 나선건 별로 이상하지 않다. 기억과 가치관을 둘러싼 전쟁을 선포한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제일의 목표는 선친 박정희의 제삿상에 국정화된 역사교과서를 올려 놓는 것일 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싸움을 진영 간의 싸움으로 몰아 총선 및 대선 승리의 지렛대로 사용하는 건 덤이다.

분명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 폭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절대군주로, 시민을 신민으로, 사회를 병영으로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 출발은 제 발로 서고, 제 머리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것이다. 지배와 복종과 억압과 조작의 대상이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에 갇혀 지내는 사람은 법적 신분이 무엇이건 정신적으로는 노예다. 당신은 주체로 설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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