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안철수의 역사관인가?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중인 안철수 의원이 창당준비위원회 첫 일정으로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자리에 배석해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셨고, 굳게 세우신 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 성장의 엔진을 거신 분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이어받아 그 체제를 조금 더 견고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헬멧을 쓰고 창원·울산·구미 공단을 도시며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화를 몸소 이끄신 분이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끄신 산업성장의 엔진을 다시 한 번 이 땅에 가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한상진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도입, 박정희 근대화·산업화 주역”)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한상진 위원장의 역사관은 경악 그 자체다. 언제부터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당에 도입하셨고, 굳게 세우셨으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헌신”한 사람이 됐단 말인가? 이승만의 실체를 한 위원장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사실상 자신을 왕으로 여겼던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먼저 한 일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정부에 대거 기용한 것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의 예방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초기의 참패에 최대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가장 빨리 북한군을 피해 남으로 도망쳤던 이승만은 인공 치하에서 살아남은 자국민에 대해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부역자 처벌을 단행했다. 인두겁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자행한 것이다.

그뿐인가? 단독정부 수립 후 자행된 숱한 인권유린과 민간인 학살,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독재,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부정선거, 국가기관의 사유화,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 등이 한 위원장이 그토록 상찬하는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에 가한 테러행위들이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도입자나 수호자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자 적이다.

박정희에 대한 한 위원장의 평가도 편파적이긴 마찬가지다. 박정희가 “산업 성장의 엔진을 건”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산업화를 위해서(?) 군사반란을, 친위쿠데타를, 헌정파괴를, 고문과 투옥과 긴급조치와 사법살인과 빨갱이 만들기를, 그리하여 결정적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시궁창에 처박은 사람이 박정희다. 동의와 설득을 통한 산업화가 불가능했을지도 의문이지만, 경제성장만 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건 유보되고 훼손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게 박정희식 사고체계다. 한상진 위원장도 그리 생각하는 건가?

한상진 위원장이 한 발언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들으면 뉴라이트의 맹장이 한 발언으로 듣기 쉽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온 두 개의 축을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로 보는데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반공과 반북 그리고 사유재산권 절대주의이며, 산업화의 속살은 물질적 풍요다. 이들의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어떤 나라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나라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일제의 식민지배, 이승만의 전제적 통치, 유사파시즘에 가까운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반된 국권강탈, 수탈, 학살,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의 파괴, 부정부패, 언론탄압, 불균등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성장 등과 같은 수다한 폐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벌어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에 불과하다.

한상진 위원장의 평소 역사관이 뉴라이트에 가깝기 때문인지, 아니면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 지지자들도 포섭할 목적으로 저런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한 위원장의 역사인식이 완전히 그릇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정작 궁금한 건 안철수 의원의 역사관이다. 안철수 의원에게 묻고 싶다. 안 의원은 한상진 위원장의 역사관에 동의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안 의원의 역사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관과 다를 바 없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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