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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없어지는 날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03월 15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우리는 지금 6공화국에 살고 있다. 이 공화국은 87년에 개정된 헌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87년에 개정된 헌법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장수 헌법이다. 87년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대통령직선제의 부활일 것이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 소장은 영구집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신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는데,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됐다. 박정희의 정치적 계승자라 할 전두환이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지 않을 리 만무.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직접 뽑기까지는 무려 16년이 걸렸다.


현재의 헌정질서 안에서 대통령 선거가 중단되는 상황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돼 대통령제가 내각제 등으로 개정된다면 대통령 선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헌법개정이 어렵지 않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과반이 발의하고 재적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데, 의외로 국민투표의 벽이 높지 않다.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된다.


​쉽게 말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얻으면 단독으로, 180석 이상을 얻으면 내각제 개헌에 찬성하는 야권 의원의 조력을 받아 대통령제에서 내각제 개헌에 착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언론 대부분의 집중적인 엄호 아래 새누리 지지자들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에 총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대립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통치구조이니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내각제로 바꾸자고 새누리당이 선동하면 새누리당의 지지자들이 반대할까?​


지금과 같은 단수다수독식 소선거구제에서 경상도를 석권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늘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의 정치적 호민관 새누리당을 불안하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는 대통령선거다. 대선승리를 늘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유일무이한 고민거리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라는 강한 후보를 내세우고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이 불법선거를 했음에도 문재인에게 가까스로 이겼다. 2017년 대선은 물론이고 그다음 대선으로 눈을 돌려봐도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군 중에 야권 후보들을 제압할 정도로 우뚝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패한 경험이 있는 새누리당은 두 번 다시 패배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배경과 맥락에서 보면 현시점에서 새누리당의 최대 소원은 대통령선거를 없애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처럼 변화와 개혁의 가능성이 완벽히 차단된 내각제 통치구조를 고착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아무런 방해나 스트레스 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세습하는 것이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의 집합적 욕망일 것이다.


사정이 심각한 것은 더민주당을 포함해 야권이 하는 작태들을 보니 새누리당의 꿈이 단순히 꿈에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를 지옥으로 만들 쓰나미가 몰려오는데도 속수무책이니 참 답답하다.


※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