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여왕의 몰락

두말 할 것 없이 이번 총선의 알파와 오메가는 박근혜다. 박근혜의 누적된 실정과 퇴임 이후까지를 염두에 둔 듯한 노골적 선거개입이 없었더라면 분열된 야당이 압승하는 기적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2004년 4월 총선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한 이래 박근혜는 10년 동안 불패였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이겨왔고, 언제나 이겨왔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처럼 박근혜 불패신화도 무너졌다. 박근혜가 유승민을 찍어내고 진박을 꽂는 등의 패악을 부리지만 않았던들 새누리당이 저런 참패를 당하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부질 없다. 우리가 아는 박근혜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 권력의 집중에 놀랄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힘의 원천은 선거불패신화에서 온다. 그런데 박근혜가 이번 총선에 올인(공천과 선거운동 모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힘의 근간이라 할 경상도가 뿌리부터 동요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의 레임덕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것이다. 새누리당을 비롯해 국정원, 검찰, 국세청, 경찰 등의 권력기관들은 박근혜 이후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권력을 생명처럼 여기는 박근혜가 두눈 뜨고 이를 지켜볼리 만무. 대선때까지 정부여당 내에서 벌어질 암투는 치열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야권이 불난 집 구경하듯 할 수 있는 처지는 전혀 아니다. 총선의 알파와 오메가가 박근혜였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박근혜 요인이 약해질 내년 대선에선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제대로 이뤄내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한 대선승리가 녹녹치 않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이번 총선처럼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화하거나 유보하는 걸 다음 대선에서도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만약 유승민 같은 합리적 보수주의자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결정돼 중도층까지 포섭한다면 새누리당을 야권이 이길 수 있을까?

​​내년 대선에서 야권이 반드시 승리하려면 깔끔하고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야권후보 단일화가 선결과제다. 이를 위한 최적의 방법은 야권 후보들이 모두 참여하는 원샷 경선이다. 이미 정의당이 제안한 바 있다. 문제는 이번에 기사회생한 안철수가 원샷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점이다. 안철수가 원샷 경선 참여를 거부한 채 자기로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고집하며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 대선 완주를 결행한다면 어찌될까?

새누리당 후보가 유승민쯤 되면 야권이 전부 달려들어도 쉽지 않은터에 안철수가 제2의 이인제를 자청하면 야권의 승리는 난망이다. 내년 대선만 생각하면 박근혜의 몰락과 새누리당의 참패에 기뻐하기 보단 근심이 앞선다. 나도 내가 기우였으면 좋겠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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