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표의 추락

홍만표의 추락은 처참하다. 권력과 부를 모두 누린 사람의 몰락이기에 임팩트가 더 크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건 늘 남의 일이라고 여겼을 홍만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섰을 때의 낭패감과 수치감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지만 그건 몰락의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이 홍만표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와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검찰, 홍만표 변호사 사전구속영장…탈세·변호사법 위반 혐의) 홍만표는 이제 감옥에 갇힐 위기에 놓였다.

몰락한 홍만표에게서 7년 전 노무현을 떠올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7년 전 노무현은 사면초가 상태에서 대검에 출석했다. 마침 카메라에 잡힌 홍만표의 웃음은 노무현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화인으로 남았다. 당시 홍만표는 불과 7년 후 자신이 지금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의 자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두말 할 것 없이 이명박이다. 이명박의 오더가 없었더라면 국세청과 검찰이 직전 대통령인 노무현을 목표로 덤벼들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이 끌어모은 검찰 내의 칼잡이들 즉 이인규, 우병우, 홍만표 등이 노무현을 겨냥해 한 수사수법과 강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들은 노무현을 잡기 위해 노무현의 가족과 지인들을 털고 또 털었다. 이인규 등은 조중동 등의 비대언론과는 아예 한몸이었다.

최고권력자의 하명에 의한 것이라기에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의 광기와 살의와 증오가 대검 중수부에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상고 출신인 주제에 감히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인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노무현이 너무 싫고 미워서 그러지 않았을까? 변호사 개업 후 홍만표의 행적을 보니 특권과 반칙을 미워하고 용납하지 않으려 한 노무현을 홍만표 등이 얼마나 증오했을지 알 것도 같다.

​노무현의 과오는 대한민국 검찰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검찰을 청와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부리지 않고, 검찰권-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을 검찰에게 돌려주면 검찰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주권자인 시민을 위해 검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가 아는것처럼 노무현의 순진한 기대는 참혹하게 배반당했다.

대한민국은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검찰이 어떤 조직인지 절감했다.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한 제2, 3의 노무현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명확해졌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며 그런 권력 아래서는 괴물들이 줄지어 출현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이,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이 긴절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 용진김

    동감합니다

  • namugi

    괴물과 싸우면 괴물이 된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바꿔말해서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이었고 끝까지 그렇게 했다. 검찰권을 부여하고 동서화합에 힘쓰고 분권형 대통령제의 실현 심지어 역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의 자살 등 남들이 하지 않는, 이상에 준하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분투 하는 등의 노력 말이다. 상대방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괴물은 괴물만이 상대할 수 있다. 통치자가 같은 류의 괴물이 된다면 일명 주권의 상징인 국민에게는 최악이겠지만. 이쯤에서 직접민주제의 실천을 제안한다. 이미 IT기술은 이를 실천할 준비를 갖췄다. 물론 기득권자들의 담합이 이를 막으려 하겠지만 주권이 살아나는 길은 오직 한가지 직접민주제의 실현에 있다. 대의민주제의 가장 큰 적폐인 국회의원은 모조리 없애고 대통령, 법원장, 검찰총장 등 소위 권력자라는 자들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또한 무능한 자를 자리에서 몰아내며 법안을 직접 발의하고 입법한다면 오만방자,안하무인,후안무치,위인설관 하는 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국민이 높여지고 주권이 살아나는 길은 국민 개개인이 자유의지를 깨닫고 이를 실천함에 달려있지 스스로를 높여 부르고 국민위에 존재코자 하는 자들에 달콤한 말과 의지 없는 미래의 제시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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