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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끔찍한 건국절 사랑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08월 17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박근혜의 8.15 경축사를 비판하기란 쉽다. 비판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눈길을 특히 끌었던 건 연설 서두에 한 박근혜의 발언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와 북한 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함께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건국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박근혜는 오늘을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이건 정말 이상한 말이다. 분명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헌 헌법은 이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시해 더 분명히 하고 있다.


현행헌법과 제헌헌법이 명확히 말하듯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전신은 대한민국임시정부다. 건국은 이미 1919년에 된 것이다. 다만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주권과 영토의 회복이 1945년 8월 15일에 된 것뿐이다. 1948년은 8월 15일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의 정부가 수립된 날에 불과하다. 박근혜가 이 같은 헌법의 가장 기초적인 사실도 모르고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박근혜가 무지한 탓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박근혜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세탁을 노리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에게 친일반민족 행위는 아킬레스건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병탄과 일제의 식민 통치에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고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친일반민족행위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화인과도 같다.


그런데 만약 나라가 1948년 8월 15일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반민족행위는 비난 가능성이 한결 줄어든다. 존재한 적도 없는 나라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걸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충성을 바칠 대상이 없는 사람들이 일제를 위해 부역했다 한들 그게 그리 큰 흠도 아니다.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되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된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거의 전 부면을 장악했고 조직했기 때문이다. 반면 잃어버린 나라의 국권을 찾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독립투사들은 설 자리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들은 건국의 주역이 아니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를 복권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아서다.


이렇듯 건국절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엄청나다. 건국절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며,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굴욕은 민주공화국을 잃은 자리에 찾아온 것은 아니기에 견딜만한 것이 된다. 일제 강점기의 슬픔과 괴로움과 치욕이 무겁지 않다면 일본과의 동맹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물론 한일동맹은 미국의 지도 아래 있다.


박근혜가 건국절을 강조하는 이유가 위에 열거한 것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최후를 마친 장소를 하얼빈 감옥에서 뤼순 감옥으로 정정한 청와대가 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는 박근혜의 주장을 바꾸지 않는 걸 보면 박근혜의 건국절 주장이 단지 무지에서 기인한 것 같지는 않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