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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배우자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09월 08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지난주 8월 31일은 참여정부가 8.31부동산종합대책을 야심차게 내놓은 지 11년째 되는 날이었다. 한덕수 부총리가 기자회견을 하며 '부동산투기는 이제 끝났다'는 취지로 기염을 토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종부세 전선의 최일선에 있던 나는 정말 부동산 투기시대와 작별하는 줄 알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착각을 할 정도로 8.31대책은 훌륭했다.


먼저 8.31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자. 8·31대책은 부동산 종합 대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택, 토지, 세제 부문을 전부 포괄하고 있다.


주택 부문에는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거래 투명성 확보, 미니 신도시 건설 및 강북 광역 개발 등을 수단으로 하는 주택 공급 확대, 공공 택지 지역 내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에 대한 원가 연동제와 채권 입찰제, 전매 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 부문 역할 확대 등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토지 부문에는 취득 요건 강화, 전매 요건 강화, 기반 시설 부담금과 개발 부담금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개발 이익 환수 등의 조치가 담겨 있다.


비대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세금폭탄'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했던 세제 부문에서는 보유 단계에서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9억 원 → 6억 원,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 6억 원 → 3억 원)과 실효세율(2009년까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에 대해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을 1% 수준으로 인상)을 현실화했고, 양도단계에서 1가구 2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세율을 상향했으며 투기 우려 지역 내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서 양도세를 중과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부동산의 보유와 처분 단계에서는 세 부담이 늘어나지만, 취득단계(거래세)에서는 세부담이 경감되도록 8·31대책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들의 재산세 부담은 급격히 늘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인상적이라 할 것이다.


참고로 금융부문에서는 투기지역 내에서 가구별 아파트담보대출을 제한함으로써 투기적 가수요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쌈짓돈으로 삼아 투기를 일삼는 것을 차단하려고 고심한 점이 눈에 띈다.


위에서 상세히 살펴본 것처럼 8·31대책은 부동산과 관련해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치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31대책을 비롯해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들은 총체성과 유기성, 정합성, 균형감각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노무현이라는 발군의 리더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철학과 의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철학과 정책은 이명박의 집권과 함께 산산조각났고 박근혜에 의해 흔적조차 지워졌다. 그 결과 집값은 여전히 높고, 전세난민들은 넘쳐난다(서민 없는 정책으로 어찌 전세난 잡겠나).


비대언론과 사이비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실패로 낙인찍힌(이들이 실패의 가장 대표적인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수도권의 집값 상승률인데, 이들은 당시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인해 선진국 가운데 집값이 폭등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평균상승률만 따지면 대한민국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간과한다. 물론 참여정부도 유동성 과잉의 위력을 경시한 나머지 유동성 관리에 실기한 과오는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우리가 복기해야 하는 건 이런 전철을 반복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 : “America's housing malaise is slowly spreading", 《Economist》, 2007년 12월 6일자. 한국은 국토해양부 홈페이지 통계자료에서 작성. (김수현, 2008 재인용) 자료 : “America's housing malaise is slowly spreading", 《Economist》, 2007년 12월 6일 자. 한국은 국토해양부 홈페이지 통계자료에서 작성. (김수현, 2008 재인용)

다음에 들어설 개혁정부는 부동산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개혁 정부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철학을 지녀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발생 및 전유는 만악의 근원이라 할 만하다. 부동산 정책의 근간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적 전유를 용납하지 않고, 지대를 공유한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 개혁 정부는 제도와 정책의 설계도 중요하지만, 이걸 집행하고 지속시키는 힘의 확보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여정부는 정책에 성공하고 정치에 실패했다. 그 결과 정책도 좌초했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조직하고 확장하며 공고히 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컨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환수하는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면 그동안 부동산 불로소득을 전유해 온 시민들이 격렬히 저항할 것이다. 이때 이들을 겸손히 설득하고, 부드럽게 다독이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분들 아닙니까? 다 같이 살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여러분들이 조금만 양보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한다면 강남 시민들 중 상당수가 호응하지 않을까?


끝으로 진보성향의 유권자들과 매체들은 대안 없는 비판이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비판을 지양하고, 선후와 경중과 완급을 구분할 줄 아는 전략적 안목과 태도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개혁정부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관대함과 전략적 인내를 진보성향의 시민들과 매체는 지녀야 한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며, 세상을 구성하는 힘들은 다양하고, 세상은 절대 순식간에 좋아지지 않는다. 우리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할 수 없고, 기존의 질서와 제도와 세력과 경로를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반했다고(예컨대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했다고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시민들, 이라크에 평화재건부대를 파병했다고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시민들, 한미​ FTA를 추진한다고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시민들, 버블세븐 집값만 오른다고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시민들 등등)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결과 대한민국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재앙을 맞았다. 이런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해선 결코 안 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부동산 관련해서는 특히 노무현의 성취와 한계를 정확히 직시하고 배워야 한다. 노무현의 성취는 좀 더 세련되게 계승하고, 한계는 발전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도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