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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너무나 가엾은 노무현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10월 17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나는 지금 부동산 관련 기사 몇 개를 보고 있는 중이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급기야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위치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평균 매매가격이 사상 최초로 평당 4천만 원을 돌파했고, 강남 3구 소재 아파트들의 평균 매매가격이 사상 최고가였던 2006년 시세에 근접했다는 내용의 보도(상승세 가팔라진 서울·수도권 아파트값…거품 경고등도 켜졌다)와 심지어 지방에서 투기꾼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상경해 아파트 사재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갭 투자’ 고양시 휩쓸자, 아파트 1000채 주인이 바뀌었다)가 그것이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바닥을 기는 가운데 유독 주택가격만 치솟고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저금리 탓이 있지만, 본질적으론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투기판을 만든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취득세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 제한적 양도세 면제,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손익공유형 모기지 및 정책 모기지 확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장치를 사실상 형해화하는 재건축 규제 완화, DTI 및 LTV 완화 등의 정책을 쏟아냈는데 모두 주택거래를 늘리고 주택가격을 상승 혹은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저금리 기조에 정부의 부동산 투기 조장(?)정책이 결합해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다.


집값만 치솟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집값에 육박할 정도로 전세가격이 올라 전세난이 극심(전국 아파트 전세가율 72% 넘어…평균 전세가 2억 120만원대<매일경제>),([전세 매매 역전시대]곳곳에 ‘전세 버블’…‘렌트 푸어’ 경고음<헤럴드경제>)하다. 한 마디로 집 없는 중산층과 서민들은 아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진정 놀라운 건 이런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박근혜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집권 당시 버블 세븐 위주로 집값이 뛰자 조중동은 연일 면을 털어 참여정부를 공격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는 물론 진보,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과 매체와 지식인들도 참여정부를 난타했다. 물론 분노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과 메인스트림은 종부세를 위시한 참여정부의 투기억제 및 불로소득환수장치에 분노했고, 진보, 개혁 성향의 매체와 지식인과 유권자들은 뛰는 집값에 분노했다.


생각해 보면 이들의 분노는 모두 부당하다. 당시는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상태였고, 선진국 클럽 중 대한민국은 집값 상승률이 매우 낮은 축이었으며, 지방 집값과 전월세는 극히 안정돼 있었다. 버블세븐의 집값 상승은 정부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버블세븐과 수도권의 집값이 폭등했다고 참여정부에 돌을 던진 사람들의 분노는 정당하지 않다.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고 저주했던 한나라당과 비대언론과 메인스트림은 기실 불로소득만을 탐하는 도적 떼의 속성을 폭로했을 뿐이다.


​투기를 억제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며, 주거안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음에도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노무현이 한편에 있고, 나라를 부동산 투기판으로 만들고 전세 난민을 대량으로 발생시키고도 만고에 떳떳한 박근혜가 반대편에 있다.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하고, 이렇게 불공정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정말 피를 토할 노릇이다.


2,000년도 더 전에 사마천은 불멸의 역사서 사기(史記) 백이전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어진 이로 이름난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굶어 죽었고, 공자의 제자 중 으뜸인 안회顔回는 극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로 죽었다. 그러나 대악당 도척盜跖은 매일 죄 없는 백성을 죽여 그 간을 회로 쳐서 먹었으며 그 무리를 이끌고 천하를 어지럽혔지만 끝내 아무 천벌도 없이 제 목숨을 온전히 누리고 살았다. 세상에는 선을 행하여 화를 얻고 악을 행하여 복을 얻는 일이 있는데 그래도 천도무친天道無親(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으며), 천도부도天道不謟(언제나 착한 이의 편이다) 라는 말을 믿어야 하는가?



사마천의 절망이 사마천만의 절망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아 낙담 된다. 선을 행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을 행한 자가 벌을 받는 세상은 정녕 꿈이란 말인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