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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누리당은?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10월 27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저로서는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맘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긴급 대국민 사과 "최순실 도움 받았다. 이유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



이건 사과가 아니고 사죄가 아니다. 부끄러움을 찾을 길 없고 발생한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박근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를 수도 있다. 박근혜가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일방적으로 하고 내려간 후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탄핵"이었다.


주권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철학의 부재, 정책의 실패, 인사의 난맥상 더 나아가 친인척과 측근들의 발호와 부패 연루 등은 대통령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는 일들이지만 그런 이유로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진 않는다. 설사 대통령이 경제를 파탄 내고,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며,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후퇴시킨다고 해도 대통령의 직무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남용 가능성을 염려해 탄핵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해 놓았다.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일단 재적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탄핵소추발의(발의는 재적의 절반이 동의)에 동의해야 하고, 그다음에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해 주어야 한다. 두 개의 산을 넘기란 극히 어렵다.


대통령으로 뽑은 이상 그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인격이 형편없고, 공심(公心)이 부재한 사람이더라도 임기를 채우게 하는 것이 맞다. 그게 우리 헌법의 정신이며, 인류가 누대로 쌓아온 민주주의의 가르침이다. 단 전제가 있다. 그 대통령이 유권자들이 선출한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유지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증거와 증언에 근거해 연이어 터져 나오는 보도들은 한결같이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거나 개입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수정하고, 대통령의 일정을 보고받았다. 국무회의 자료와 남북관계 등을 포함한 극비자료들이 최순실에게 보고됐고, 최순실이 청와대 의사결정 및 정책 결정에 관여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순실은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도 적극 개입했다.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사유화는 차라리 애교로 여겨질 지경이다.


미르 재단의 사무총장을 했던 사람의 증언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최순실, 정호성이 매일 가져온 대통령 자료로 비선모임"



왕정이나 봉건시대에도 섭정이나 수렴청정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공식화된 제도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간인에 불과한 사람이 아무런 법적 권한 없이 국정 최고 책임자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한 예는 찾기 어렵다. 우린 지금 인류가 맞닥뜨린 적 없는 신기하고 엽기적인 경험을 국가적으로 하고 있다.


분명한 건 이미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헌법적, 법적, 도덕적 자격을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가 당장 하야(이렇게 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하는 것도 방법이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그 내각에 다음 대선까지의 국가관리책임을 맡기고 자신은 일체의 권한 행사를 하지 않다가 임기를 마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중요한 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박근혜로부터 완벽히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비상사태의 최대 책임은 당연히 박근혜에게 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큰 정치적, 윤리적 책임이 새누리당에 있다. 새누리당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박근혜와의 결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새누리당의 정치적, 윤리적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지켜 준 정치적 자궁은 새누리당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 가운데 단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박근혜가 최순실과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라는 것을 새누리당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집권할 욕심에 사로잡혀 박정희 후광을 업은 박근혜를 철저히 이용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단물을 다 빨아먹은 후 박근혜를 버리려 한다. 조폭의 의리조차 없는 새누리당은 배신의 정치가 무언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에 대한 추궁과 규탄은 그것대로 하되 새누리당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린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이라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