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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과 새누리당이 두렵다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11월 01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박근혜가 최순실의 난(亂)에 대해 녹화 사과를 한 직후의 대통령 지지율이 14%였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26%다(박 대통령 최저 지지율 14%...MB 기록 경신). 나는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것이 사실상 최순실이라는데도, 최순실에 의지하지 않고는 제 손으로 옷도 제대로 입을 수 없었던 대통령을 만들고, 굳건하게 지지한 정당이 새누리당인데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더민주에 필적할 만큼 많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새누리당 열혈 지지자들의 관심은 박근혜 사임 저지가 아닐 것이다. 박근혜가 당장 사임을 하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식물 대통령으로 잔여 임기를 청와대에서 칩거하건 어차피 대통령 박근혜는 끝장났다. 새누리당 핵심 지지층의 관심은 이미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패하는 걸 어떻게 막고 정권을 재창출할 것인가로 옮겨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근혜를 낳은 정치적 자궁 새누리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와중에 대한민국 특권과두동맹의 일등신문 〈조선〉이 나섰다. 〈조선〉은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사망을 선언하며 박근혜가 북핵위기에만 전념하고, 여야 모두의 지지를 받는 거국총리를 임명해 잔여임기의 내정을 맡기도록 촉구했다. ([사설] 부끄럽다) 기실 〈조선〉은 진즉 박근혜와 친박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박근혜의 힘을 빼기 위해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우병우를 공격한 바 있다. 우병우 등의 반격이 매우 거칠어 〈조선〉은 전술적 후퇴를 단행해 후일을 도모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조선〉이 판을 새로 짤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빨리 왔다.


〈조선〉을 필두로 하는 특권과두동맹(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재벌, 새누리당, 비대언론, 검찰, 종교권력, 어용지식인 등의 연합체)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컨틴전시 플랜을 짜지 않을 리 없다. 〈조선〉을 머리로 하는 특권과두동맹은 우선 박근혜를 정치적으로 거세한 후 유권자들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거국총리 카드로 잠재우고, 개헌을 화두로 던져 야권을 교란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의 '부끄럽다'컬럼은 그런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상일이 특권과두동맹의 뜻대로 되진 않는다. 박근혜 사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터져 나올 경우, 특권과두동맹은 박근혜 사임을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전술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군 중 누군가를 특권과두동맹이 대선후보로 낙점하고, 그가 박근혜에게 대통령직 사임을 요구해 박근혜가 이를 수락하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그는 단번에 새누리 지지자들과 어쩌면 부동층의 일부도 흡수할지 모른다. 사정이 이렇게 전개되면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지 않는 한 대선 승리를 낙관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국면에서 특히 중요한 건 야당과 야당 대선주자들의 역할이다. 야당과 야당 대선주자들은 어부지리를 노리지 말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 〈조선〉과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특권과두동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단언컨대 야당이 새누리당의 실수에만 기대 집권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야당과 야당 대선주자들은 특권과두동맹이 개헌이라는 화두를 던져 전선을 교란시킬 가능성과 박근혜 사임을 활용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설사 박근혜가 사임하더라도 야당과 시민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쟁에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공격하는 자, 과단성이 있는 자가 승리한다. 우유부단하고, 좌고우면하는 자가 승리하는 경우는 없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