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이문열의 몰락

이문열이 조선일보에 쓴 칼럼을 읽었다. 칼럼의 제목은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다. 이 칼럼을 읽으며 나는 거의 10년전 이문열의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던 때가 떠올랐다. <호모 엑세쿠탄스>만큼 이문열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을, 시민들에 대한 폄하를 적나라하고 공공연히 다룬 작품도 드물다.

이문열은 <호모 엑세쿠탄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침없이 친북좌파 정권(친북좌파 정권의 근거는 희미하다)으로 낙인찍은 뒤 혹독한 비판을 퍼부어 댄다.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과도한 연역(演繹)이 사방에 넘쳐난다. 이문열은 자신의 주장, 예컨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친북좌파라는, 을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전제한 뒤 이를 뒷받침할 사실들을 매우 편향적으로 제시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야(寒夜)대회-이 소설 3권에 등장-에 참석한 자들의 독기(毒氣)서린 발언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이문열의 적의(敵意)는 섬뜩한 수준인데 이문열은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를 이용한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등장하는 기스칼라의 요한과 붉은 땅 이두매를 다스리는 거라사의 시몬은, 로마제국과 전쟁 중인 유대 땅 예루살렘에 입성해 유대동족들을 수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악행을 통해 유대민족을 분열시키고 결국에는 유대민족이 로마제국에 멸망당하는데 큰 역할을 한 악당들인데, 이문열은 노골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스칼라의 요한으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을 요한의 후견 아래 있는 열심당의 각료로, 김정일을 거라사의 시몬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문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한(김대중)과 시몬(김정일)이 몇 해 전부터 ‘내통’하고 있으며, 요한(김대중)은 시몬(김정일)과의 내통을 위해 시몬에게 조공(朝貢)을 바쳤고, 이를 얼치기 열심당원(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들이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공공연히 발언 되고 있다.

또한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극단적 엘리티즘이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대중들을 소수 음모가들의 선동과 감성 이벤트에 홀린 어리보기들로 묘사하는 대목들은 윤리적 미감을 거스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인터넷 언론과 시민기자에 대한 야박하기 그지없는 평가에는 노골적인 경멸의 기미(幾微)마저 포착된다.

<호모 엑세쿠탄스>에도 미덕은 있다. 이문열 소설이 지닌 장점들, 그중에서도 유려한 문체와 끝 간 데 모를 교양(敎養)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문열 소설의 최대 강점이라 할 유려한 문체와 압도적 교양은 <호모 엑세쿠탄스>가 내포한 치명적 결점, 즉 작가가 지닌 극우반북 이데올로기에 문학적 외피를 씌워 독자들에게 전파하려는 의도를 은폐하거나 희석시키려는 장치나 고안(考案)이라는 혐의가 짙다.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을 보니 이문열이 <호모 엑세쿠탄스>이후 달라진 게 전혀 없음을 알겠다. 아니 오히려 이문열의 필력이 쇠퇴한 기운이 역력하다.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도된 역사관이나 부정확한 사실인식이나 언론과 대중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의 최대 문제점은 너무 못 쓴 글이라는 것이다. 중언부언과 횡설수설 사이를 오가는 이문열의 칼럼을 읽는 시간은 고통스러웠고, 독해는 어려웠다.

스무 살의 젊은 날 나를 매료시킨 이문열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이문열이 이인화(정유라로 인해 구설에 오른 그 이인화)를 칭찬하며 한 말처럼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는 법”이다. 이문열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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