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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오월 광주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12월 13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이제는 박사모 등의 지지 이외에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박근혜의 인기는 대단했고, 권력기반은 견고했다. 박근혜가 이리 허망하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박근혜 체제의 균열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나는 세월호 참사를 들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유족들의 결사적인 투쟁이 빙하처럼 단단했던 박근혜 체제에 금을 냈다.


정부, 여당뿐 아니라 대다수 매체 및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악의적인 왜곡과 패륜적인 비난과 참담한 조롱을 받아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유족들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의 이유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무능과 무책임을 줄기차게 묻고 추궁했다. 최대의 위로를 받아도 모자랄 세월호 유족들이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최대의 모욕을 견디며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꿋꿋이 요구하자 적지 않은 시민들이 유족들의 요구에 호응하여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의 몰락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는 박근혜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대통령 역할을 했던 최순실의 실체가 천하에 폭로되면서다. 하지만 세월호의 희생과 세월호 유족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박근혜 체제에 균열을 내고 휘청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세월호 사태를 통과하면서 시민들은 "이게 나라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세월호의 희생과 세월호 유족들의 투쟁은 80년 오월 광주민중항쟁에 비견할 만하다. 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맞서 궐기했고, 고립무원 상태에서 가공할 무력을 지닌 계엄군과 교전을 벌였다. 광주시민들의 항쟁은 계엄군의 압도적 무력에 밀려 실패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학살되고, 부상을 입고, 영혼이 파괴됐다. 하지만 광주의 희생과 광주시민들의 진상규명 투쟁은 결국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았던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87년 체제를 열었다.


80년 5월 광주의 희생과 시민들의 진상규명 노력이 있었기에 군부독재체제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본격화됐다. 세월호의 죽음과 유족들의 결사적인 투쟁이 있었기에 박정희-박근혜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오월 광주와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오월 광주와 세월호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온전히 구현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