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늙은 남자,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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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희정이 마음에 들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 안희정이 참여정부 내내 감옥과 변방을 전전하면서도 앙앙불락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던 게 안희정이 마음에 든 유일한 이유였다. 손톱만한 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는 게 다반사인 세태에 비추어 안희정의 처신은 단연 돋보였다. 참여정부 출범의 공신이면서 참여정부 내내 양지에 있었던 이광재의 존재는 안희정의 처지를 더욱 불우하게 만들었다.

안희정 정도의 도량을 지닌 사람이라면, 안희정 수준으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을 책임질 리더 중 하나로 눈여겨봐도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가 틀린 것 같다. 도량이 아무리 넓어도, 마음을 아무리 잘 다스려도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솔루션을 가지도 있지 않다면 대한민국을 책임질 리더가 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무릇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의 대선 출마선언문에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근본모순과 그에 대한 해법이 오롯이 담겨 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안희정의 대선출마 선언문 속에서 대한민국의 근본모순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나 정교한 해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희정의 출마선언문은 안희정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를 짙게 만들었다. (안희정 출마선언 “내가 민주당 적자…30년 내다볼 젊은 리더십”)

시민의 권리이자 성장전략(내수진작을 통한 성장)이기도 한 복지를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폄하한 사람이 안희정이라는 데 나는 경악했다. 경제에 관하여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지 않겠다고 말하며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까지 이어가겠다는 안희정을 이해하는 건 힘겨웠다.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4대강으로 상징되는 토건적 사유와 환경파괴, 재정 탕진을, 박근혜의 창조경제는 국가재정의 사유화를 각각 의미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출마선언문을 통해 나를 크게 실망시킨 안희정은 “노무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고 말해 나를 절망시켰다.(상승세 탄 안희정, ‘대연정’ 카드 꺼내) 협치는 좋은 것이다.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관건은 상대가 누구냐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보수정당이라면 대화와 협치의 상대로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당인가? 새누리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바깥에서,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공화정을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여전히 비호하는 정당이 아닌가? 그런 정당과 협치와 대화가 가능한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썩은 살은 도려내야 한다. 썩은 살과 사이좋게 지내면 몸 전체가 곪는다.

나는 안희정의 스탠스가 신념 때문인지 선거전략 차원인지는 모른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모호한 지향, 어설픈 봉합과 타협으로 좋은 세상이 열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안희정은 적폐를 해소하고 현실의 모순을 지양한 후 화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모르는 것 같다. 험한 세월을 헤쳐오면서 안희정이 너무 빨리 늙어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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