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이순자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이순자의 발언을 읽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내가 오독했다고 생각해 여러 번 읽었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다. 이순자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순자는 24일 출판사 자작나무숲을 통해 펴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순자의 망언은 계속된다. “오히려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 줄 것을 권유했다”, “남편이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당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전 사령관뿐’이라는 최 전 대통령 판단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 등등(전두환 부부 회고록 출간, 이순자 “사실 우리 내외도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

이순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전두환은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되었고, 광주학살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전두환·이순자 내외도 광주사태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이순자의 정신착란적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두환의 죄악에 대해서는 사법적 정리가 끝난 상태다.

대법원은 “12·12를 전·노가 주동이 되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 군사반란이라고 본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고, 5·18과 관련해서는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국회 봉쇄, 정치인 체포, 5·18 초기 강경진압 등을 ‘폭동’으로”판단했다.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42) 전두환 노태우 내란 등 사건 (下))

이순자의 거짓말과 달리 전두환은 군사반란의 ‘수괴’이자 주권자의 살육을 지시한 ‘학살자’에 불과하다. 아무리 이순자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그런 시도가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정말 놀란 건 이순자의 적반하장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집권하기 전만 해도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해자임을 부인하거나 차리리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통과하면서 가해자들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거나 서슴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감행하고 있다.

이건 도덕의 붕괴, 윤리의 파탄, 부끄러워하는 능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통과하면서 한국사회는 바닥까지 추락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해서 처리해야 할 현안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붕괴된 도덕과 윤리의 복원처럼 긴절한 것도 드물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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