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법치주의를 파괴한 헌법재판소

통진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인용한 헌재의 결정이 일으킨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헌재의 결정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 중 하나인 ‘정당’ 중 하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정당해산심판제도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를 발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을 구하고 사법부가 이를 인용한 경우가 독일과 터키 외에는 찾기 어렵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하의 대한민국이 추가됐다. 세계헌법학계에 정당해산심판제도와 관련된 연구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통진당에 대해 정당해산을 명한 헌재의 결정은 법리적으로 헛점 투성이다. 헌재는 통진당의 당헌·당규·강령 등에 ‘숨은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이고, 이석기 등이 당을 주도하는 세력인데 이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모두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고, 통진당을 해산하는 이외의 대안이 없으며, 통진당을 해산시키는 것이 존속시키는 것보다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통진당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결정의 치명적인 문제는 ‘논증’은 없고, ‘단정’과 ‘비약’만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헌재는 통진당의 당헌·당규·강령 등에 ‘숨은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과감히 선언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논증은 부재하다. 결국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인용한 8인의 재판관들은 후삼국 시대의 궁예처럼 관심법(觀心法)을 사용해 통진당의 ‘숨은 목적’을 알아냈다는 말이 된다. 관심법은 점쟁이가 사용하는 것이지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건 아니다.

이석기 등이 통진당을 주도했고, 이들이 국가기간시설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등의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고스란히 귀속되는 통진당은 해산되어야 한다는 헌재 재판관 8인의 논리도 터무니 없다. 이석기 등이 당을 주도(‘주도’가 무슨 의미인지도 극히 불분명하다)한다는 증거도 없고, 이미 이석기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이석기 등을 통진당과 동일시하고, 이석기 등이 폭력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 했다고 단정했다.

통진당을 해산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통진당은 해산되어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도 수긍이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헌재 재판관 9인 중 유일하게 기각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통진당에 대한민국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그 세력 중 일부가 국회의원이라면 국회에서 자율적 절차를 통해 제명할 수 있다. 정당해산은 원칙적으로 선거 등 정치적 공론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

정당제도와 해산에 관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for Democracy through Law, 일명 베니스위원회)는 정당의 강제해산과 설립금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들을 마련한 바 있다. 베니스위원회의 지침을 요약하면, 특정 정당(정당원 일부가 아니라 당 전체)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명확히 위태롭게 하고, 이를 폭력(계획 및 실행 모두를 포함)을 통해 달성하려 하며, 그럴 경우에도 정당해산 이외의 대안들이 전혀 없는 경우에 한해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베니스위원회가 정한 정당해산 요건 가운데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통진당을 해산시켜버렸다.

한편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위험천만한 질주를 계속했다.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비례, 지역 불문)을 상실케한다고 선언했다.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이 ‘정당해산 심판의 본질에서 나오는 기본적 효력’이라고 천명하고 있지만, 이런 천명의 근거는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당법 등 어디에도 없다. 즉 8인의 헌법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의 해석이라는 사법부의 기능을 일탈해 사실상 헌법과 법률을 제정하는 월권을 한 것이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결정 선고에 앞서 “부디 오늘 이 결정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어리석거나 뻔뻔한 주문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정당설립 및 정당활동의 자유, 다원주의 및 소수자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들이 결정적으로 위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파괴하고, 법치주의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가 인민재판의 호민관 역할을 하는 장면을 참담한 심정으로 목격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재판소를 폐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재가 발생한다고 해서 불 없이 살수 없는 것처럼, 헌법이라는 국가 실정법 질서 내의 최고규범을 통한 규범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헌법재판은 법치국가의 필수요소이며 이를 담보하는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이다. 물론 미국처럼 대법원이 헌법재판기능을 겸할 수도 있겠지만,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재판소에 배분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기왕에 있는 헌법재판소를 헌법정신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헌법재판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9인의 헌법재판관들의 구성방식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현행 헌법상 9인의 헌법재판관들은 대통령(정부)이 3명, 국회(입법부)가 3명, 대법원장(사법부)이 3명을 각 지명하게 하여 일견 권력분립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회 여당 몫 1명과 대통령이 지명하는 대법원장 몫 3명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7명을 지명하는 셈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 이런 방식으로 임명되는 헌법재판관들의 가치관과 성향이 학벌(서울대), 성(남성), 연령(50대 이상), 직업(고위 법관 및 검사) 등의 공통점으로 인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헌재의 변화는 재판관들의 선출권한을 아예 국회에 귀속시키는 등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재판관의 자격도 획기적으로(지금은 법관자격이 있는 자만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다)바꾸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재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강화, 재판관들의 구성의 다원화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선 ‘사법의 정치화’를 효과적으로 지양할 수 유일한 해법인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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