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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권하는 사회, 절실한 노동인권교육 의무화

정호희 프로필 사진 정호희 2015년 01월 14일

민주노총 홍보실장

‘갑질’이 화두입니다. 모두 분노하고 한탄하고 자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왜 저항하지 못하냐고 한탄하고 또 누군가는 그 한탄에 대하여 조소합니다.


이 ‘갑질’은 모두 노동자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항공사와 백화점과 아파트의 감정노동자들이 진상 갑질의 피해자들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실 노동자들에 대한 ‘갑질’을 권하는 사회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사회의 ‘갑’이 되게 하려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그것을 위해서 부모들은 을 중의 을인 비정규직이 되어 일합니다. 모두 갑을 향해 질주하는듯하지만, 사실은 밑바닥을 향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지요. 취업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알바생들은 반찬값, 우윳값, 담뱃값, 게임비를 벌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벼랑 끝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갑질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하고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경제의 원리는 사실 갑질을 권하는 구조입니다. ‘노력하면 당신도 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경쟁의 원동력이니까요. 그런데 그 갑질의 도가 지나치면 그 구조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피케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노동자들보다 열악했다고 합니다. 인간사회에서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죠. 인류역사상 최초의 노동관계법은 ‘단결금지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더 극렬한 저항이 발생하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급기야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세계의 절반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필요성은 체제유지를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헌법상 노동삼권이 정착된 것은 1940년 전후입니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헌법적 기초입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노동삼권에 더하여 ‘이익균점권’이라는 노동 4권을 보장했습니다. 전쟁과 5.16을 거치고 점점 약화되던 노동3권은 유신헌법에 이르러 형태만 남고 유명무실해졌다가 6월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행헌법에서 다시 온전하게 복원되었습니다.


단언컨대 이 노동삼권-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세력은 체제전복-국기 문란 세력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노동기본권에 대해서 공교육 체계에서조차 가르치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이 알바경험이 있다는 청소년들은 자기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과로사하는 지경입니다.


진상 고객 앞에 무릎을 꿇은 백화점 주차알바는 일당을 벌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한 학기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하다가 봉변을 당했을 때, 패기 있게 맞서지 못했다고 질책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을 중의 을인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도무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알바라고 아무렇게나 대하면 법률적 처벌을 받지만, 고용주도 고객도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업무시간에 서너 명의 주차알바가 2시간씩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그 백화점과 용역업체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진상고객’만 보고 기업과 사회의 책임을 외면하면 그 갑질은 도를 넘어 사회체제를 위협하게 됩니다. 지금 절실한 것은 ‘노동’과 ‘인권’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입니다. 진상고객은 천성적으로 못된 몇몇 개인의 일탈행위만이 아니라 노동을 홀대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그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갑질’을 권하거나 내버려두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몇 년 전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경제단체들은 ‘이념 편향 교육’이라며 반발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왜 편향일까요?


모두가 분노하는 ‘갑질’에 대해서 의식과 인성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그리고 노동의 관점으로도 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기하건대, 지금 당장 모든 공교육 과정에 ‘노동인권교육 의무화’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갑질을 멈추고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