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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제도 정상화가 시급하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5년 03월 09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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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은 1975년 8월 25일 이래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한다. 다운계약서를 작성ㆍ신고하면 탈루세금에 대한 추징은 물론,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상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부동산투기와 논문표절 등도 고위공직자에게는 용납되기 어려운 결격사유이다.


이번달 정치뉴스의 초점이 될 4개 부처 장관급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즈음하여 후보자 4명 모두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일부 후보자에 대하여는 다운계약서를 통한 취ㆍ등록세 탈루, 증여세 회피 의혹, 부동산투기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후보자는 위장전입 사실을 부인하는게 아니라 시인하면서 송구하다는 태도를 보여 위장전입은 이미 고위공직자의 치명적 결격사유는 아닌 것으로 결론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국민소득만 높아진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14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GDP)이 9만 달러가 넘는 카타르와 4만 5천달러 수준인 쿠웨이트가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 그 가까운 예가 될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그에 걸맞는 사회 윤리와 문화수준을 필요로 한다. 특히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여 민간부문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견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가 2000년 6월경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것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통해 사회의 투명성과 윤리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는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과 사명의식을 보여주기 보다는 고위층의 윤리의식이 국민 일반의 통속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을 드러내기 일쑤다. 고위공직의 후보자에 오를 정도이니 학식과 재력이 평균 수준을 웃돌아 자녀교육이나 아파트분양을 받기 위한 위장전입의 필요성이 더 컸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기는 부동산투기 광풍이 부는 시절에 여윳돈을 가진 사람이 투자전망이 좋은 지역을 골라 부동산이 사 둔 것이 어째서 비난받아야 하는지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자기논문 표절이나 제자가 쓴 논문을 자신의 논문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 학계의 관행이었는데, 이것이 새삼 문제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미국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우리의 관점으로 사소한 일이 결격사유가 되어 장관 후보 등이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듯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조이 베어드 법무장관 내정자, 조지 W 부시대통령이 지명한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내정자와 버나드 케릭 국토안보장관 내정자가 모두 불법체류자를 가정부나 보모로 고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도사퇴하거나 지명철회됐다. 오바마대통령도 탈세 논란 때문에 정치적 스승이자 의료보험 개혁의 사령탑인 톰 대슐 전 상원의원에 대한 보건장관 지명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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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여 우리의 인사청문회는 옥석 구분의 기준이 명확치 않아 정쟁의 대상이 되는 등 본래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러가지 편법과 탈법, 심지어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후보자가 낙마하지 않고, 당초 내정된 자리에 임명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런 속에서 인사청문회의 순기능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공직의 무게와 함께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덕목을 사회전반에 널리 알려 사회윤리를 드높이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를 거친 공직후보자들이 여러 가지 편법과 탈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버젓이 공직자로 임명되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공직 부적격자를 여과하는 기능을 상당부분 잃어버렸고, 사회윤리를 드높이는 기능은 언감생심이 된 형국이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었을 때 당초 설정된 인사청문회의 대상자는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거나 국회에서 선출해야 하는 국무총리와 감사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에 한정되었다. 그런데 2003년 2월경 국정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을 인사청문대상자에 포함시켰고, 2005년 7월부터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요구에 의하여 모든 국무위원이 청문대상에 포함되었다. 그 후 합동참모의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대상자가 확대되었고, 지난해에는 특별감찰관과 한국은행총재가 인사청문대상에 새로 포함되었다.


문제는 헌법상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국무위원 후보자 등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는데 원천적인 화근이 있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들어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 김진태 검찰총장, 문형표보건복지부 장관,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 등 8명의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는 불통 인사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가지 흠결이 드러난 공직후보자를 임명 강행함으로써 인사청문회 제도의 역기능이 우려되고 있다. 즉 인사청문회가 부적격 공직자를 가려내는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편법과 탈법, 나아가 불법의 전력이 있어도 고위 공직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공직윤리관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민간부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견인하기는 커녕 오히려 항간의 시민들에게 도덕과 윤리의 감수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미국과는 달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형적 제도의 폐해를 자초한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정치 후진성을 드러내는 국격 망신의 무대가 되지 않게 하려면 이제라도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통과 기준의 재정립과 임명권자의 국회 의견 존중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