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의 거짓과 진실에 관하여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5년 10월 23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지만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인위적인 측정 단위에 불과한지, 실제 존재하는 물리현상인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간이란 존재는 영원한 탐구대상이다.


새삼 시간을 거론하는 것은 난해한 시간의 정체를 살펴보자는게 아니라 10년이란 세월이 갖는 의미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은 28,180달러로 2004년의 15,898달러에 비해 77% 증가했다. IMF 자료에 의하면 같은 기간 중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407%, 미국은 30%, 영국 19%, 독일 39%, 프랑스 27%의 증가세를 보인 반면 일본은 0.3% 감소했다. 일본은 20년 전인 1994년에 비하여도 1인 국민소득이 약 6% 감소하여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울부짖음이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은 어떠한 기간을 분석대상으로 삼더라도 전혀 타당성이 없는 ‘유언비어’임이 드러난다. 즉 대상기간을 10년 단위로 끊어 1980년과 1990년을 비교하면 이 기간 중 1인당 국민소득은 286% 늘어났고, 1990~2000년 중 82%, 2000~2010년 중 87% 각 증가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상기간을 나누어 보더라도 1980~1987년 중 1인당 국민소득은 106%, 1988~1997년까지 159%, 1998~2007년 중 76%, 2008~2014년 중 38%의 증가세를 보였다. 대체로 저개발국이나 중진국 단계에서는 대폭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성장세가 둔화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10년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과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면 명백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최근 10년간 국내총생산에 있어 인도는 184%, 인도네시아는 218%, 브라질은 25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단순화를 위해 1인당 국민소득과 국내총생산을 중심으로 최근의 경제지표를 살펴본 결과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우리의 경제사회 구조의 많은 부분이 일본을 모방했다는 점이다. 근대화의 문물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고, 경제개발도 일본이 물려준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일본은 노벨상 수상 기록에서 나타나듯 기초과학 수준과 국력의 저변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확고한 선진국이다. 일본은 이처럼 나라의 기틀이 탄탄한데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10년, 20년’의 경제적 파란을 겪었다. 여기에 우리에게는 굴기하는 중국이 미래를 불안케하는 상수가 되어 있다. 현재 우리는 국민이 가진 지혜와 역량을 총동원하여 활로를 찾지 않는 한 우리 자손의 안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현실 진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전 초중고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중 어느 것을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홍역을 치른데 이어 2년 전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도 모자라서 또다시 국정화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는 집권층을 보면 현실인식이 너무나 한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것도 집권층 스스로 영원히 국정화를 하자는게 아니라 일정 기간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국정화는 시행착오가 될 운명임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제와 검정제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미 국정제를 거쳐 검정제로 이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아울러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이 어려운 사안은 보편적 견해를 따르는 것이 맞고, 이는 인터넷 문명의 시대정신인 참여ㆍ개방ㆍ공유의 관점에도 부합하는 길일 것이다. 분단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내세워 보편적 흐름에 역행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태된다는 것이 경험칙이기도 하다.


지도자와 국민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10년이란 세월은 국운을 가름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행정수도 이전,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논쟁 등 몇년에 한 차례씩 반복적으로 소모적 논쟁을 경험하고 있다. 모든 국력을 결집하여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잃어버린 10년’을 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렇게 시행착오가 될 운명을 예고하고 사회적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으니 심각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