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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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의 정치적 갑질에 유권자들이 응답해야 할 때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03월 30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정치권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정치가 3류라는 혹평에도 아랑곳없이 정치 지망생들은 넘쳐 난다. 이번 총선에도 전직 총리, 대법관이나 장관 출신, 장성 출신, 판ㆍ검사 출신, 대기업 임원, 교수, 변호사 등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대거 후보로 나서고 있다. 이들 중 선택을 받은 자만이 정치권 입성에 성공하는데도 정치는 왜 이 모양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들을 선별하는 여야 정당의 공천 과정이 막장 공천으로 불릴 정도로 뒤죽박죽이어서 총선을 치르기도 전에 정치권에 거는 기대를 무산시키고 있다. 까마귀들이 정치판의 물을 흐리는 바람에 백로가 정치권에 담을 쌓는 현상도 발견된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정치판이다.


여야 정당이 공천과정에서 노출한 난맥상은 한마디로 정치적 갑질로 평가될 수 있을 듯하다. 공천을 받지 못한 자나 컷오프된 의원에 대한 갑질일 뿐만 아니라 유권자에 대한 갑질이다. 막장 공천, 보복공천, 협잡공천이 난무하는 정당에게 국고보조금을 왜 지급하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국록을 먹는 공직자가 사욕을 위해 공무를 처리한다면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당은 국록을 먹고, 정실이나 사감에 따라 공천 작업을 처리하고서도 퇴출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 이는 유권자 내지 국민에 대한 갑질이 아닌가.


2015년 한 해 동안 새누리당은 195억여 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 민주당의 전신)은 177억여 원, 정의당은 21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을 지급받았다. 정당이 국록을 지급받는 것은 공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데 있다. 그런데 여야 정당이 총선 후보자 공천에 있어 역대 최악이라는 오점을 남겼으니 이는 국민을 얕잡아 보고 자행하는 갑질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재계와 업계의 갑질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갑질을 한 자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땅콩 회항의 장본인이 그러하고,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치겠다”던 재벌 총수도,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한 기업주도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정당의 정치적 갑질은 후안무치하게도 피해자인 민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의 본산인 국회는 법 제정과 예산 편성을 통한 자원배분의 기능 못지않게 사회 각층에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이 크다고 본다. 정치가 잘못되면 나라 살림이 엉망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정신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갑질이 용인된다면 사회 각 분야의 갑질이 단죄를 받는 것을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재벌주나 기업주의 갑질은 재력이라는 사유재산권에 터 잡은 것임을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사유재산권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공적 권력에 기초한 갑질은 애당초 성립될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적 갑질이 백주에 횡행하는 까닭은 안하무인식으로 국민이 안중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4. 13. 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은 지역구 944명, 비례대표 158명으로 평균 경쟁률이 3.67 대 1이다. 우리는 1963년부터 헌법에 정당조항을 두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 등 정당을 보호하고 정당해산 상의 특권을 인정하는 등 정당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만약 정당 공천이 당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총선의 후보 경쟁률은 이보다 몇 배 높아졌을 것이 틀림없다. 후보 난립을 막아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정당 공천제를 운영해 온 것이지만 그 성과는 수준 미달이다. 오히려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갑질과 무원칙 공천 등이 민간에 파급되어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나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갑질, 각 분야의 정실인사와 부당거래 등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까 두렵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들은 정당의 공천 결과에 신뢰를 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의제는 원래 ‘보다 나은 나’를 아바타로 뽑아 국정을 처리하게 하는 것이지만 당분간 우리는 투표 참여를 통해 경험을 쌓고 그로써 선구안을 기르는 방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보다 나은 나’를 가려내기는 어렵지만, 민의의 심판이라는 집단지성이 작동될 여지는 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 투표장으로 향해야 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혐오를 조장하여 매가(mega) 차원의 기득권 수호를 꾀하는 세력들에게 경고장을 날려야 한다. 3류에서 4류로 전락하고 있는 정치에 유권자들이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 이로써 정치판에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이 결코 갑질을 용인하는 성역이 될 수 없음을 이번 총선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권의 갑질에 매력을 느낀 악화를 몰아내고, 양화가 돌아오는 정치권의 진정한 봄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