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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06월 14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여전히 공백이 많다. 최근 19대 국회 임기만료 이틀 전에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하여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 51조는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하더라도 폐기되지 않지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폐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상시 청문회를 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의결되어 정부에 이송되었으나 대통령이 19대 국회 임기 만료 2일 전인 지난달 27일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헌법 53조가 규정한 국회의 재의 절차를 밟을 물리적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되돌아온 법률안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가 쟁점이다. 여소야대 정국이 된 20대 국회에서 야당은 헌법 53조에 의거한 재의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고, 여당은 헌법 51조를 근거로 국회법 개정안은 이미 폐기되었다는 입장이어서 이것이 막 개원한 국회 운영에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2006년 8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하여 국회 동의를 요청하였다가 헌재 소장의 장기간 공석을 초래하고 3개월여 만에 지명철회를 하는 등의 파행을 겪은 것도 헌법의 공백에서 비롯된 일이다. 헌법 111조는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문장의 통상적 의미에 따르면 헌재 소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다음에 재판관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되는 게 맞다.


그런데 2000년 9월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친 윤영철 헌재소장 후보자는 법무법인 대표라는 민간인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어 임명동의를 받은 전례가 있었다. 전효숙 재판관은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을 받은 지 며칠 후인 2006년 8월 25일 재판관 임기가 3년 남은 상태에서 사임했다. 재판관직을 유지한 채 헌재소장으로 임명되면 재판관 재임기간이 소장 임기에 포함되어 소장 임기 6년이 3년으로 단축된다는 이유였다.


이것이 당시의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발을 샀다. 편법으로 헌재소장 임기를 늘리려 한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당시에는 이러한 비판이 여론의 호응을 받았고, 결국 대통령의 지명철회로 전효숙 재판관만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인간사의 궤적을 되돌아 나가면서 인간의 한계와 몽매함을 깨우치는 법이다.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하여 인사청문 절차를 밟던 현 박한철 헌재소장은 청문위원의 질의에 “저는 지금 현재 재판관으로서 지명을 받았고, 재판관직을 사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 임기 만료 시점인 2017년 1월 31일이 제 임기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하여 다른 청문위원이 “만약 대통령이 재판관 임기가 1년 남은 사람들을 계속 소장으로 임명해 나간다면 헌재의 독립성과 헌재 소장의 독립성이 위험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그 대안을 말해보라”는 취지로 질의하자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면 저의 경우에는 잔여 임기를 수행하는 것으로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적어도 헌법 개정이 되기 전에는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되면) 이것을(재판관직을) 먼저 사임을 하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결론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전효숙 전 헌재소장 후보자가 재판관직을 사임한 것이 헌재 소장의 임기가 단축됨에 따른 헌재의 독립성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이었음을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되었다.


헌법의 공백을 없앤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수정헌법 25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정헌법 25조는 1967년 2월 발효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제1절: 대통령의 면직, 사망, 사임의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


제2절: 부통령직이 공석일 때 대통령은 부통령을 지명하고, 지명된 자는 연방 의회 양원의 과반수 인준을 받아 부통령에 취임한다.


제3절: 대통령이 그 직무상 권한과 의무의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서면 신청을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제출한 때에는 직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서면이 제출될 때까지 부통령이 대통령 대리로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제4절: 부통령과 행정각부의 장관의 과반수 또는 연방 의회가 법률로 정한 다른 기관장의 과반수가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서면 신청을 제출한 경우 부통령은 즉시 대통령을 대리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는 1788년 발효된 최초의 미국 헌법 2조 1절 6항의 「대통령의 면직, 사망, 사임 또는 직무상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해당 직무는 부통령에게 귀속한다」는 규정 중 ‘직무상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의 판정을 누가 할 것인지가 애매하여 이를 명백히 밝힌 헌법 수정이다. 우리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를 누가 판정하는가를 놓고 헌법학자들도 입법의 미비점으로 보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 논의가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보장을 위한 국민투표의 부결 소식을 접하며 우리 헌법 제34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규정이 기본소득 보장에 대한 근거 규정이 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개헌 논의에 즈음하여 헌법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