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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난국은 진실규명 능력의 부족 때문이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10월 17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10여 년 전 섬유기계의 결함을 밝히는 것이 쟁점이 된 소송을 맡은 적이 있다. 의뢰인은 그 전까지 일본에서 직기를 수입하여 원단을 생산해 왔는데, 그 무렵 처음 시판된 국산 직기를 도입하였다가 자주 실이 끊어지고 생산된 원단에 보푸라기가 생기는 등의 결함이 발견되어 기계를 돌려주고 기계 대금의 반환을 원했다. 그런데 소송 진행 과정에서 직기의 결함 여부를 판정해 줄 감정인을 구하지 못해 소송이 표류하였고, 그러다가 의뢰인 회사가 도산함으로써 소송을 포기한 적이 있다. 법치주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자연과학을 비롯한 학문과 기술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함을 절감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난제와 미제 사건의 대부분은 진실규명 능력의 부족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약점을 기화로 진실규명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이나 성완종 게이트가 그러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사건 등이 그러하다. 다행히 탈북 서울시 공무원의 간첩 사건은 증거조작에 의한 관제 간첩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상이 일부 드러나 사법적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진실규명 능력을 믿기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진실규명과 진상파악 능력의 부족을 틈타 대중을 희생양으로 삼는 심각한 부정이 전문가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무리한 법령 해석과 생떼에 가까운 주장이 횡행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독성학 분야 권위자인 서울대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옥시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뒷돈을 받고 옥시 측에 불리한 실험데이터를 누락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최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진위불명 사건이 속출하다 보니 그 틈을 타고 행정부가 무리한 법령해석을 감행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로 인한 해임을 임기만료로 해석하여 특별감찰관보와 감찰담당관에게 당연 퇴직을 통보한 인사혁신처의 법령해석이 그러하다. 특별감찰관법 시행령 제3조 제4항에는 「특별감찰관보와 감찰담당관은 임용 당시 특별감찰관의 임기만료와 함께 퇴직한다.」고 되어 있고, 같은 시행령 제5조는 「특별감찰관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특별감찰관보가 그 직무를 대행하고, 특별감찰관과 특별감찰관보가 모두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특별감찰과장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고의 의미에 관하여 법령체계상 정부조직법의 하위규범인 대통령령인 직무대리규정 제2조 제4호는 「전보, 퇴직, 해임 또는 임기 만료 등으로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해당 직위가 공석인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임기만료라는 어휘의 뜻에 해임을 포함하는 해석보다는, 해임이 사고의 한 예로 명시되어 있는 대통령령인 직무대리규정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인사혁신처의 해석은 국정감사에 특별감찰관실의 누구도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무리수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입지가 주민 거주지와의 거리 등에 비추어 유해하지 않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정부의 하소연은 설득력이 있기 어렵다. 더구나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둘러싸고 사망진단서를 발부한 주치의가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이나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의 합동 특별조사위원회의 외인사라는 의견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미르재단 등 신종 일해재단 설립 기도로 비치는 사건에 관하여 집권 여당이 진상규명 자체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혼란상은 우리의 진실규명 능력이나 진상파악 능력의 부족을 틈탄 기회주의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가 2012년~2016년 북미 지역에서 한 리콜 건수(52건)가 국내에서 한 리콜(24건)의 2배를 웃돌아 차별적 리콜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도 역시 우리의 진실규명 능력의 수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현대차는 최근 ‘세타2’ 엔진을 장착한 차량에 대하여 미국에서는 엔진 결함을 인정하여 리콜한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에 대하여는 리콜을 하지 않아 국토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 엔진 공장의 청정도에 문제가 있어 미국 생산 제품만 리콜 대상이 된 것”이라는 현대차 주장의 진위가 가려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한 차례 리콜 후 재판매를 시작한 갤럭시 노트7에 대하여 다시 발화 사고가 발생하자 급기야 단종을 결정한 것도 미국 등 선진국의 진실규명 능력을 직시한 결론일 것이다. 어쨌든 삼성이나 현대와 같이 다국적 기업이 된 회사의 제품에 대하여는 선진국의 제조물 결함에 대한 진상 파악 능력이 우산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국내 소비자들은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의 각종 난제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해결해야 하지, 다국적 체제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와 민주주의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경제적인 환경, 요컨대 학문과 문화 등 그 사회의 총체적 수준과 보조를 맞추어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