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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에서 "이것이 나라다"로 가려면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11월 11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저절로 나오고, 분노와 자괴감이 전국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변에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의 해법을 놓고 정치권과 청와대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등 비상시국을 극복할 대처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내우외환의 불똥이 발등에 떨어졌는데도 정치권은 밀고 당기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은 최고의 공직자인 대통령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어려울 때 도와준 사적 인연 때문에 민간인인 최순실에게 대통령 연설문 첨삭 등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개념이 성립되기 어렵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이 최순실이라는 비선의 국정 농단에 동조했다는 데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공사 분별을 하지 못한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대통령도 인간으로서의 실수를 할 수 있는 만큼 보좌진은 대통령의 실수를 직언으로 바로잡을 책무를 지고 있는데도 오히려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데 보좌진이 대통령을 바로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함께 넘어진 형국이다. 정부수립 후 68년, 헌법을 9번 개정하고서도 민주공화국의 기틀이 이처럼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은 국가의 골격과 체질을 환골탈태에 가깝게 근본적으로 고쳐야 함을 말해준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국정의 많은 부분이 인치로 운영되는 데 있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전경련을 통해 재벌의 발목을 비틀어 미르ㆍK스포츠의 재단 출연금을 모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재벌들은 청와대의 눈 밖에 나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수석비서관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했을 것이다. 나아가 최순실 등은 롯데와 CJ 등 수사를 받거나 총수가 사면을 받아야 할, 약점이 있는 재벌에게는 추가로 출연금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만약 이번 사태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재벌은 재단 출연금을 낸 반대급부로 금융ㆍ세제ㆍ행정규제 등에 있어 특혜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가 포기된 이유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집권층과 재벌 사이의 은밀한 거래는 정경유착의 검은 거탑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박근혜 정권 초기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CJ의 부회장과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의 돌연한 퇴진, 문체부 장관의 후임자 없는 퇴진 등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한 곳이 부패하면 다른 곳이 연쇄적으로 곪아 도덕적 파탄에 빠지는 도덕 붕괴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무력한 법치주의하에서 비선이 대통령의 묵인과 비호 아래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는 없었다. 헌법과 법률이 만들어 놓은 국가 권력의 통제장치가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할 수 있다면 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이나 국회 청문회 등은 왜 필요하겠는가.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불의에 항거함으로써 국민에 봉사하는 진정한 공직자는 드물었다. 대통령의 위법한 명령이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청와대 비서진들이 최순실 등의 국정 개입을 방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과 관련하여 헌법을 외면한 주장이 나오고 있어 법치주의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즉,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국회가 추천하는 국무총리에게 내치를 맡기고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만 맡는 방안, 거국중립내각을 수립하되 대통령은 아예 2선으로 물러나 식물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 중 대통령의 하야는 초 실정법적인 저항권에 근거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저항권의 보충성, 최후수단성에 비추어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는 한 적절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또한, 대통령의 국가 원수 지위 등에 비추어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여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도 헌법에 부합하기 어려운 방안이다. 현행 헌법상 가능한 것은 대통령의 위헌ㆍ위법행위가 밝혀지면 탄핵 절차를 밟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회가 추천한 국무총리에게 헌법상의 행정 각부 통할권,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ㆍ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내치를 맡기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착안해야 할 것은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국가 시스템의 부실을 바로 잡는 데 있다. 분노하고 궐기하는 것만으로는 4. 19.와 6. 10.의 「미완의 혁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함으로써 인치의 폐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결의를 다져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어떤 자세로 공무에 임해야 하는지를 모든 공직 희망자들의 가슴에 각인시켜야만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