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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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정국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12월 09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시국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안개 정국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결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저절로 나온다. 당장 탄핵 열차가 제대로 달릴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의결이 1차 관문이라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2차 관문이다. 탄핵절차 진행 중에 촛불집회의 규모와 성격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다. 탄핵 열차가 대다수 국민의 뜻과 달리 멈춰 설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그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는 그 즉시 대선국면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변수가 된다. 대통령 사퇴는 헌법 제68조의 대통령 궐위에 해당하고, 60일 내 후임자를 선거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는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선거일 50일 전에 공고하여야 하고, 선거일 전 24일부터 2일간 후보등록을 한 뒤 그 다음 날부터 선거일 전날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대통령 사퇴일부터 길어야 10일 이내에 선거일과 후보등록기간 등을 정한 선거공고를 해야 하는데, 선거일을 비롯한 대선의 기본 틀을 둘러싸고 여야 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한 때에도 동일하게 생기는 문제다. 대통령 궐위시의 대통령 선거에 관한 규정의 미비에서 비롯되는 걱정이다.


탄핵절차가 1차 관문을 통과하여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시작되는데, 이것도 정국에 수많은 논란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대통령의 권한을 어떤 범위에서 행사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 중에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에 관한 전례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그 성격이 현저히 다르고, 결과도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2004년의 전례를 그대로 따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탄핵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의 심리 기간이나 재판관의 임기만료로 인한 후임자 임명 문제도 탄핵절차의 진행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탄핵심판 대상자에 대한 형사소송이 진행 중일 때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법 제51조의 규정을 이번 탄핵심판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법학자들 간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탄핵심판절차를 정지하거나 심리가 길어져 내년 4월을 넘길 경우 국민들이 이를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당론인 내년 4월 조기 퇴임안을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탄핵절차가 개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1월 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퇴임과 내년 3월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이 예정되어 있어 탄핵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6명의 찬성이라는 정족수 충족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재판관의 임명 문제가 중대한 이슈가 될 것이다. 헌재의 심리 기간이 내년 1월 말을 넘기게 되면 바로 대통령 권한대행자인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대통령권한대행자의 권한의 범위에 관한 규정이 없어 생기는 문제다.


지난 6월 필자는 19대 국회 임기만료 직전에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관련하여 미국의 수정헌법 제25조를 사례로 들면서 우리 헌법의 빈틈을 메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25조는 1967년 2월 발효된 것으로 1788년 발효된 최초의 미국 헌법상의 「대통령의 면직, 사망, 사임 또는 직무상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해당 직무는 부통령에게 귀속한다」는 규정 중 ‘직무상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의 판정을 누가 할 것인지가 애매하여 이를 명백히 밝힌 것이다. 미국의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저격당해 사망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의식이 없었고, 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암살자의 총탄에 사망할 때까지 8일간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수정헌법 제25조 제4절에 「부통령과 행정각부 장관의 과반수 또는 연방 의회가 법률로 정한 다른 기관장의 과반수」가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을 판정하도록 한 것이다. 헌법의 미비점 발견과 그에 대한 보완이 170여 년이라는 미국의 오랜 헌정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향후 정국의 추이를 좌우할 수많은 변수들 중 상당 부분은 헌법과 법률의 미비점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에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법령을 완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타국의 사례를 참고하는 타산지석의 지혜를 발휘하고 반면교사의 교훈에 따라 헌법과 법률의 빈틈을 메워나간다면 헌정을 위협하는 돌발사태의 많은 부분을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국격의 실추와 경제ㆍ외교 분야에서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화위복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대의정치의 본질인 「보다 나은 나」에게 국정을 맡겼다가 이러한 신뢰를 배반당한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로 만들어야만 후손들에게 떳떳한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헌법을 만들고 공화국을 출범시킨 지 올해로 68년, 헌정사의 중대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세밑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