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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에서 전화위복의 길을 생각해본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7년 02월 07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라 안팎에서 몰려오는 격랑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호는 좌초하지 않고 순항할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이후 사실상 국정 지휘체계의 유고사태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현재 어디쯤 가고 있는가.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의 전모는 어디까지인가. 트럼프의 미국이 국제사회에 던지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우리는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새삼 인간 능력의 유한성을 절감하게 된다. 민주국가의 헌법이라면 어디에나 마련되어 있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진행하면서 규정의 미비로 인한 복병과 암초가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기초위원과 법학자, 국회의원 등 우리 사회 법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선진국의 선례를 참조하여 만든 헌법과 법률상의 탄핵 관련 규정에 빈틈과 쟁점이 잇따라 발견되어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인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론이 언제 내려질 것인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예측이 난무하고 있는 것부터가 규정의 미비점 때문으로 보인다. 헌재 소장과 재판관의 임기를 고려할 때 2월 말 내지 3월 초가 유력하다는 예측이 있고, 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남기지 않으려면 시한을 못 박기 어렵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법기관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회 소추위원 측과 대통령 대리인단의 공방에 의하여 전개되는 탄핵심판 절차의 성질에 비추어 심리의 시간적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여론재판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정 공백의 장기화를 예방하기 위하여 ‘심판 청구일로부터 몇 개월 이내’와 같이 탄핵심판의 심리 기간을 헌법이나 법률에 정해 놓았더라면 이러한 불안은 해소될 수 있었을 것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게 되면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논쟁도 인간의 예지력 한계에서 빚어진 일로 보인다. 청와대 측이 특검의 압수 수색을 거부하는 근거로 든 군사상 기밀을 필요로 하는 장소에 대한 압수 수색의 제한에 관한 형사소송법 규정이 그 자체에 논란의 여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소모적 논란을 피하고자 만든 법 규정 그 자체에 다툼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현행 법률과 제도의 빈틈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박한철 소장이 1월 말로 퇴임하였지만, 이는 2013년 4월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 내정자가 헌법재판관의 잔여 임기에 한해 소장으로 재임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일 뿐, 제도상 헌재 소장의 임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울러 박한철 헌재소장 퇴임으로 현재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3월 13일 퇴임하는 것과 관련하여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소장 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는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탄핵심판, 헌법소원 등의 심리를 할 수 있고, 탄핵결정이나 위헌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탄핵심판 절차가 3월 13일을 넘길 경우 그 후로는 재판관 7인 체제가 출범하는데, 만약 재판관 중 누군가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불출석할 경우 심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제도상 허점은 우리의 헌법과 법률이 대통령의 탄핵 사태에 대비한 규정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미 증인 등 증거 채택에 관하여 형사소송절차의 준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또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헌재의 심판절차 진행에 대하여 항의 차원에서 ‘중대한 결심’이라는 말로 암시한 대리인단 총사퇴가 감행되는 경우 대리인 없이 탄핵심판 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이는 헌재법 제25조 제3항이 ‘각종 심판절차에서 당사자인 사인(私人)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아니하면 심판청구를 하거나 심판 수행을 하지 못한다’라는 규정의 해석 여하에 달린 문제로서 헌재의 유권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이러한 사태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등 우리의 국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을 분명하다. 그러나 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에 담긴 인간사의 양면성에 비추어 볼 때 위기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절망 속에도 희망의 싹이 돋아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법과 제도의 미비점, 민주정치의 일천한 경험을 직시하여 그것을 개선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국격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이 1787년 헌법 제정 이후 최근까지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증보 형식으로 헌법을 보완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참고할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년이면 정부 수립 70년을 맞게 되지만 우리의 능력 부족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사태를 예측하여 이에 대비할 법과 제도를 갖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결국, 치열한 논쟁과 타협을 통해 국가 운영상 드러난 쟁점사항들에 관하여 선례와 해석 예를 만들어 가고, 그것을 규정으로 축적하는 것이 국가의 기틀을 한 단계 높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방법론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