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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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7년 04월 28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간에 공조대열이 구축되어 긴장감 속에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에 관하여 공조 태세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연이어 일본, 중국의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인민군 창설일인 4월 25일을 기해 6차 핵실험을 감행할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지만 미국 중국 일본이 북핵 대응에 기민한 보폭을 보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4월 6일 미ㆍ중 정상회담과 4월 12일의 전화통화에 이어 또다시 이날 시진핑 주석과 전화 외교를 펼친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북한 핵 불용 태세의 긴박감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도 당초 알려진 것보다 늦었지만, 조만간 동해에 배치되어 대북 압박에 가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에 관하여 논의의 한 축을 차지하지 못한 채, 먼 산 불구경하는 모습이다. 외교 라인을 통해 미ㆍ중ㆍ일의 대북한 대응 동향을 수집하는 정도일 뿐, 북한을 압박할 아무런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핵전쟁이 난다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될 우리가 북핵 문제에 아무런 대처수단이 없다는 것은 이상할 뿐만 아니라 어이없는 일이다. 마치 우리는 북핵 문제의 당사국이 아닌 참관인인 양 취급되고 있는 형국이다.


대선 국면에 처한 우리로서는 소위 북풍이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주객전도(主客顚倒)와도 같은 상황을 당연시 할 수는 없고, 그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국력의 실상에 대한 감수성을 되살려야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10여 일 앞둔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누구도 앞날을 내다보기 어려운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는 언제쯤 막을 내리게 될 것인가. 경제적으로 먹고 살 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은 분명 발전과 진보의 측면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나라의 자결과 자주성은 수십 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수십 년 전이 아니라 구한말 이래 100년 이상 한반도의 운명은 열강의 손에 맡겨진 채, 세찬 바람 속의 가녀린 등불과도 같은 모습이다. 구한말의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으로 열강의 동아시아 전략 장기판에서 병졸이나 말의 처지로 전락했던 나라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하다.


대선 정국마저 우리의 자율로 헤쳐나간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가정적 상황이지만 만약 북한이 대선에 앞서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미국이 이에 응징 차원의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면 우리의 대선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열강이 두는 장기판에서 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사실상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한 것은 인용의 잘못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현재 위상을 짐작게 하는 심각한 사건으로 비친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설명했다. 수천 년 간의 역사와 많은 전쟁에 관해 얘기했다.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 시진핑과 대화를 한 후 북핵 문제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밝혀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공을 미국으로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더구나 미ㆍ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한 대응 전략에 큰 변화가 감지되어 “시진핑과 대화를 한 후 북핵문제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다”는 트럼프의 소회가 근거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당초 선제적 공격 불사 등의 입장에서 미ㆍ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을 통한 경제제재 강화 등의 방법으로 대북한 전략의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은 1905년 6월 러일전쟁의 말기에 강화회의가 열리자 그 해 7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국무장관 태프트가 필리핀 방문 전에 일본에 들러 일본 외상 가쓰라와 체결한 협약으로 1924년까지 극비에 부쳐졌다. 협약의 요지는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고,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임을 인정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 일본의 한국 지배를 합의한 것이었다.

대선 국면과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 국면이 동시에 전개되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자주독립국이라고 자처하기 어려운 나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자주, 자립, 자결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현세대의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 작지만 강한 나라, 스스로의 결단으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강소국이 되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성찰에 성찰을 거듭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