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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정비 없이는 멸사봉공하는 공직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4년 12월 16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혁신 방안으로 공공성을 강조하는 견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성이란 공익성 공정성 공평성 투명성 등을 포괄한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공공성이란 개념 이전에 우리에게는 선공후사라는 개념이 더 익숙하다.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사실 공공성은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그리스 식의 직접민주정치가 어려운 현대의 대의정치 하에서 국민의 대표가 공공성 내지 선공후사의 원칙을 등한히 한다면 그 결과는 대의의 실패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공공성이란 등산이나 야유회를 갈 때 회비를 관리하는 총무의 씀씀이 원칙이라고 본다. 총무가 회비를 자기돈 쓰듯 해서 안되는 것은 자명하다. 회비는 지출내역을 기록해야 하고 결산보고를 해야 한다. 회원들의 집단의사를 예민하게 받아들여 다수가 원하는 용도에만 지출해야 한다. 회원의 수가 적어 회비 사용에 관하여 회원의 직접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때에는 확인 후 지출이 원칙이다. 회원의 수가 많거나 시급을 다투어 회원의 뜻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나름대로 회원들이 동의할 사안인지 여부를 추정하여 지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공금 사용의 기본원칙에 충실치 못한 총무는 자격을 박탈당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헛된 지출을 배상해야 마땅하다.


사람의 집단이 존재하는 한 공공성은 돈을 사용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크고 작은 모든 단체에 있어 단체장이 구성원의 일반 의사에 반하는 인사권행사나 업무명령을 반복하면 단체의 결속력에 균열이 생기고 내부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 수준을 살펴보자. 우리 사회의 부패정도, 투명성 지수 등에 비추어 공공성 수준은 크게 낮은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그 단적인 사례로 보인다. 공공성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더라면 선박의 구조변경부터 과적, 그리고 해난구조를 위한 동원체계까지 여러 단계의 안전핀이 일제히 빠져버린 상황이 초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성 원칙에 충실할 때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 된다. 공공성 개념이 충만해야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언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은 이를 구체화하여 대통령 등의 정무직공무원은 물론, 모든 공무원에게 성실의무, 친절ㆍ공정의무, 청렴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이러한 의무의 이행을 공직자 개인의 인품에만 맡겨둔 채 이를 관리하는 제도는 엉성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도가 1983년부터 시행되어 왔지만 차명예금이 허용되고 명의를 빌린 자가 예금을 상실할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거나 표리부동한 제도였다. 선공후사의 각오가 없고서는 공직을 넘보지 못하도록 공직 선출 또는 임용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선진제도의 겉모습만 모방하고 실질을 갖추진 못했다.


미국식 인사청문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 정부윤리처(OGE) 등이 총동원되는 사전검증절차는 도입하지 않았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전방위적 과거 검증은 공직 적격자를 가려내는 효과 외에 아무나 공직을 맡는 것이 아님을 널리 알림으로써 공직윤리를 확고히 하는데도 기여한다. 미국의 사전검증 절차에서 불법체류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 또는 성추문 사실이 드러나 장관후보직을 사퇴하거나 낙마한 사례들이 공직이 요구하는 윤리성을 웅변한다.


공직제도가 정비되면 공직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멸사봉공의 정신을 갖춘 공직자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것은 대의정치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공직 선거 또는 임용제도의 정비와 함께 공직 수행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공직자의 재산등록사항 심사 결과 범죄혐의가 의심되면 검사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등 공직윤리가 실추되지 않도록 하는 몇가지 장치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대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사실 선공후사에 철저하지 않은 공직자가 활보하는 이유는 공직윤리를 확립하겠다는 의지의 부족과 제도의 미비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 즉 일명 김영란법이 지난해 8월 발의된 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공직윤리에 관한 한가한 상황인식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공직후보자가 사전검증 관련 허위자료를 제출한데 대한 형사처벌제도, 공직 수행 중 공금 낭비에 대한 금전적 책임추궁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은 함부로 공직을 넘보는 자에게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공성 원칙에 충실하게 되면 임명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등도 자연스럽게 공적 사명과 선공후사를 중요시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간에 파급되어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대규모 참사의 반복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