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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구속하지 못한다면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5년 01월 27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세계 역사를 보면 거의 모든 혁명은 그 혁명이 일어나게 한 ‘원흉’을 단죄하는 작업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했다. 그런데 1960년 봄 한국사회를 뒤흔든 4월 혁명에서는 최대의 ‘국사범’인 전직 대통령 이승만을 법정에 세우지도 못했다. 그것은 과도정부 수반 허정과 주한 미국대사 매카나기가 ‘합작’해서 이승만을 하와이로 도피시켰기 때문이다.


1960년에 85세이던 대통령 이승만은 3월 15일의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종신집권을 위해 관권을 총동원해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내무부장관 최인규 등에 대한 인사권자이자 감독자로서 발포명령을 비롯해서 민중 살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4월 19일에만 전국에서 186명이 사망하고 6,026명이 부상한 데 대해 단 한 마디 사죄도 하지 않고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이화장에 머물다가 5월 29일 아침 8시 30분 김포공항에서 아내 프란체스카와 함께 허정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달아나버렸다.


이승만은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요양을 하다가 1965년 7월 19일 사망했다. 12년 동안 독재를 한 그의 유해는 서울로 옮겨져 가족장을 치른 뒤 국립묘지에 묻혔다. 4월 혁명 뒤에 들어선 보수적 과도정부가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방해함으로써 그는 지금도 극우보수세력이 ‘국부’로 추앙하는 인물로 ‘현존’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구속된 사람은 전두환과 노태우였다. 1993년 2월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은 금융실명제 실시, 영남 중심 군부정치세력인 ‘하나회’ 척결 등으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정책 실패와 측근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매몰 등 꼬리를 무는 대형사고 때문에 극도의 궁지에 몰렸다.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고육책인지 독자적 결단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 수감하는 결정을 내렸다. 먼저 11월 16일 노태우를 거액 수뢰 혐의로, 12월 3일 전두환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7일의 군사반란 주도 혐의로 구속했다. 나중에 노태우에게는 군사반란 참여, 전두환에게는 부정축재 혐의가 추가되었다. 결국 1996년 4월 1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1심에서는 사형)에 추징금 2,205억원, 노태우는 징역 12년에 추징금 2,688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영삼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1997년 12월 22일 두 사람을 특별사면으로 풀어줌으로써 쿠데타와 부정을 일삼은 전직 대통령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을 아예 포기한 셈이다.


2008년 2월 25일부터 5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킨 이명박은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와는 다른 행태로 국가를 회복 불능의 파탄 상태로 몰아넣었다. 2007년 17대 대선 기간에 ‘전과 14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호된 시련을 겪은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 그의 친족과 측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정과 비리로 철창에 갇혔다. 이명박 정권은 ‘부도덕 백화점’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는 임기를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서울 내곡동에 퇴임 뒤 사용할 거처 부지를 산다는 명목으로 장남 이시형에게 청와대 공금을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여론의 호된 비판을 사기도 했다. 노무현이 그랬다면 야당에서 ‘탄핵’을 주장할 법한 사건이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민’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가 퇴임한 뒤 심각한 문제들이 잇달아 드러났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을 비롯해서 국군사이버사령부와 보훈처 등 공기관이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위해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그런 기관들을 총괄하던 그는 아무런 사법처리도 받지 않았다. 그가 선거부정을 지시했거나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른바 ‘4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 비리)’에 관한 한 그는 면책을 받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명박이 퇴임을 앞둔 2013년 1월 17일 감사원이 발표한 ‘4대강 사업 살리기 사업 주요시설물 품질 및 수질관리 실태’에 관한 감사 결과가 중요하다. 감사원은 그 사업이 ‘총체적 부실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려 22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들인 사업이 그런 결과를 낳은 데다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한 사실까지 확인되었다면 후임 대통령 박근혜는 특검을 구성해서라도 이명박을 수사하도록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자원외교에서 국민의 혈세가 대통령과 공기관 및 국영기업체들의 ‘쌈짓돈’처럼 유용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온갖 부정과 검은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2014년 후반기에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자원외교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 그의 뜻에 따라 국가의 재정·행정·인력 등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총동원됐다. 그 역시 13 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 자원개발 관련 양해각서를 24건이나 체결했다. 이 가운데 18건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한겨레> 2015년 1월 23일자 1면). 그렇다면 박근혜는 이런 사실을 인지한 검찰을 향해 이명박을 직무유기와 국고 낭비 혐의로 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방산 비리는 대한민국이 ‘부실 공화국’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외국에서 들여온 상륙정 장갑차에서 물이 줄줄 새고, 최첨단 구축함(KDX-Ⅱ)에 486PC가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해군의 구조함(통영함)에 어뢰탐지기가 아니라 어군탐지기가 달려 있는 사실에 대해 이명박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4자방 비리로 인한 국고 손실은 100조 원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명박은 이미 퇴임한 개인으로서 대통령 박근혜가 결심만 한다면 얼마든지 구속해서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할 수 있다. 공소시효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런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의 무능과 독선을 소재로 거친 공격을 퍼붓는 친이명박계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연말 자원외교에 관한 국정조사를 100일 동안 하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기초 조사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새누리당의 몸 사리기와 미온적 태도 탓이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 마땅히 사법처리를 받아야 할 이명박이 ‘황제경호’를 누리면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미화하는 자서전까지 내는 작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같은 인물과 그 추종자들이 강고한 진영을 이루어 주권자들을 우롱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4자방 비리 규명을 위한 국민위원회’라도 구성해서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