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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민상토론’의 유쾌한 반란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5년 05월 12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웃을 만한 일이 별로 없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그랬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3개월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더욱더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한국전쟁 빼고는 가장 슬픈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는 진상이 밝혀지기는커녕 대통령 박근혜의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자세 때문에 아직도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외교, 갈수록 꼬여가는 남북관계,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문제, OECD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자살률,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죽이는 ‘사육’ 같은 교육, 보수언론의 끝없는 ‘종북몰이’···


그래서 텔레비전을 틀면 짜증만 난다. 아무리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볼만한 프로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이 특히 그렇다. 그런데 지난 4월 5일 KBS2 텔레비전의 ‘개그콘서트’에서 첫선을 보인 ‘민상토론’이 많은 시청자에게 폭소를 안겨주고 있다. 나는 1회부터 지난 5월 3일(일요일)에 방영된 5회까지의 민상토론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결론을 말하면,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처음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럴까? 나는 한참 웃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거기에는 이명박 정권 이후 지상파에서 사라진 정치 풍자가 변칙적 형태로 되살아나 있었다.


주로 정치인들과 정치 현안을 소재로 삼고 있는 민상토론은 정공법적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개그맨 박영진이 역시 개그맨인 유민상과 김대성을 상대로 회당 8~9분씩 융단폭격 같은 질문을 퍼부으면 두 ‘패널’은 계속 당황하면서 동문서답을 한다. 박영진은 말꼬리를 잡아 정치인들과 정치 현안 쪽으로 화제를 비약한다.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일으킨 무상급식 중단 논란, 전 대통령 이명박의 ‘기업 특혜 2천억 원 의혹’과 ‘자원외교’, 홍준표의 해외출장 골프 논란, 집권 3년째를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를 주제로 한 청년실업, 담뱃값 인상, 경제정책 등등···


그러나 진행자 박영진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 모든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이끌어내지는 않고 ‘먹섹남’으로 유명한 유민상과 ‘얼간이’ 같은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김대성을 ‘활용’해 개콘 방청객의 웃음을 자아내기에만 열중한다. 그런데도 세 개그만이 유발하는 폭소 효과는 대단하다.


지난 5월 3일 밤에 방영된 ‘민상토론’ 5회를 소재로 이 프로그램이 일으킨 ‘유쾌한 반란’의 동인을 찾아보기로 하자.


진행자 박영진이 이렇게 말문을 연다. “지난 월요일이었지요. 이완구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국무총리 잔혹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는데요.” 근자에 지상파 방송에서 ‘박근혜 정부의 불명예’라는 표현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시청자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방송사의 냉혹한 갑을 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놓인 개그맨들이 그런 질문을 받고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영진이 “이완구 전 총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묻자 유민상은 “아휴!” 하고 몸을 떨며 진땀을 흘린다. 박영진은 김대성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댄다. “이완구 전 총리 사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 사퇴보다는 조퇴하고 싶습니다. 몸이 안 좋아가지고.” 유민상도 그 말을 받아 “저도 배가 좀 아파서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애원한다. 박영진은 “평소 유민상씨 캐릭터라면 배고픈 건 제가 좀 이해하는데 왜 배가 아프다는 건가요?” 개콘의 여러 코너에서 뚱보 유민상이 유난히 ‘먹기’에 집착하는 모습들을 익히 보아온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더욱 폭소를 터뜨릴 것이다. 이어지는 대화들은 드디어 박근혜를 거론하기에 이른다.




박영진: 여기 김용준, 정홍원, 안대희, 문창극, 이완구 다섯 분의 총리 후보와 총리가 낙마하거나 사임했는데 두 분이 격렬하게 토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성: 나는 총리고 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유민상: 이 멍청한 놈아.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거야.
박영진: 대토옹령!
유민상: 잘못했습니다.
박영진: 대통령, 대통령이 임명을 잘못했다?



박영진의 ‘유쾌한 반란’은 토론을 마무리하는 발언에서 절정에 이른다.




유민상씨의 의견은 개그콘서트 조준희 피디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어디까지나 유민상씨 개인 의견임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SNS에는 민상토론이 명쾌한 결론 없이 표류한다는 비판도 올라 있다. 그러나 나는 이 프로가 참으로 오랜만에 정치적 풍자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상토론은 단순히 소심한 개그맨들이 자신의 부자유스러운 처지를 ‘바보스럽게’ 드러내는 코미디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정치권력 앞에 주눅이 들어 정치를 비롯한 온갖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솔직하고 대범하게 의견을 발표하지 못하는 주권자들을 패러디한 콩트라고 볼 수 있다.


민상토론의 유민상과 김대성은 물론이고 박영진조차 공정방송과는 거리가 먼 지상파방송의 현실을 개그로 고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담당 피디와 작가 팀의 탁월한 능력이 돋보인다. 개그콘서트 팀장인 피디 이재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상토론의 장점은 매주 주제를 바꿔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수위 조절을 잘해 재미있는 코너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민상토론을 만들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KBS는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싸우다 ‘유배생활’을 하는 언론노동자가 수두룩한 MBC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그래도 진정한 자유언론을 실천하고 공정방송을 이룩하기까지 ‘공영방송사’의 뜻있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