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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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의 ‘박비어천가’와 언론의 ‘안보상업주의’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5년 08월 26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지난 며칠 동안 한반도 남과 북의 정권은 마치 곧 전쟁이라도 벌일 듯이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무장 지대의 ‘지뢰 폭발로 인한 준사관 2명 부상’과 남쪽 군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그리고 북의 ‘보복 포격’으로 극한적 대치 상황이 벌어지자 8월 21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를 열고 그날 오후 5시를 기해 전방지역 군부대에 ‘전시상태’를, 전방지역 전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한국군은 즉각 ‘진돗개 하나’ 발령으로 응수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4일 대통령 박근혜가 전투복을 입고 제3야전군 사령부를 찾아가서 “북한의 어떠한 추가 도발에도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한 뒤 나라 안에는 전쟁 직전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8월 25일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기운 빠진 태풍처럼 갑자기 소멸해버렸다. 남과 북의 대표들이 판문점에서 3박 4일 동안 잠도 거르다시피 하면서 끈질기게 대화와 담판을 계속한 결과였다. 혹시 전면전이 터지는 것이나 아닌지 공포에 휩싸여 있던 남과 북의 동포들을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이번에 펼친 ‘전쟁 임박 드라마’가 ‘공동보도문’ 한 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서 갈라진 겨레의 평화공존, 협력을 통한 상생,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인지에 관해 심각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25일 오전 발표된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의 6개항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열고, ‘올해 추석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재개’하며,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 초에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박근혜 정부 2년 반까지 7년6개월 동안이나 뒷걸음질을 거듭해온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책으로는 너무나 미미하다.


왜 그런지를 지난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과 비교하면서 짚어보기로 하자.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자주 주장하는 현재의 정권과 달리,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이어받은 노태우 정권조차 1991년 9월 18일 북한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대통령 노태우는 당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군축,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등 ‘남북관계 정상화 3원칙’을 발표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한 실리적 계산 때문이기는 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에 비하면 아주 전향적이고 진취적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각기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 공동선언’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통일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통일대박’을 외치는 박근혜에게서는 ‘민족의 자주와 평화, 민족의 대단결’이라는 1971년 ‘7·4 남북공동성명’ 대원칙의 한 자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남의 박정희와 북의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그 성명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40년이 훨씬 넘도록 ‘민족통일의 대장전(大章典)’으로 살아 있다.


8월 25일 남북 ‘공동보도문’이 나온 뒤 새누리당 집행부는 ‘박비어천가’를 부르면서 신바람을 내고 있다. 특히 당 대표 김무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확실한 원칙 고수와 군의 단호한 대응태세, 국민의 강인한 의지, 여야의 초당적 대응이 하나 돼 이끈 좋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과연 공동보도문에서는 박근혜의 ‘확실한 원칙’이 관철되었는가? 박근혜는 지난 24일 “이번 회담의 성격은 무엇보다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도발을 비롯한 도발행위에 대한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공동보도문에는 북측이 ‘확실한 사과’를 했다는 문구가 전혀 없다. 제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지뢰를 폭발’시킨 주체가 누구인지가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이 유감’일 뿐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확실한 사과’도 아닌 ‘유감’일 뿐이다. 오죽하면 보수우파 인터넷매체인 <뉴데일리>(8월 25일자)가 “이 대목만 놓고 보면, 한국군의 지뢰가 터진 것인지 북한이 ‘지뢰도발을 한 것인지 애매모호하다며 트집을 잡기에 딱 좋다’고 ‘판정’을 내렸을까?


박근혜는 대통령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도는 8월 25일 ‘콘크리트 지지층’의 우상으로 다시 떠올랐다. 김무성의 주장대로 그 지지층이 박근혜가 ‘확실한 원칙 고수’로 ‘군의 단호한 대응태세’를 이끌어갔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남북 위기 해소가 박근혜의 단독 작품이 아님은 분명하다. 북한이 새해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요청했는데도 박근혜 정권이 ‘모르쇠’로 일관해 온 데 대한 나라 안팎의 비판을 견디는 일도 한계에 이르렀고,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터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전승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을 앞둔 중국이 얼마나 곤혹스러워했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종대는 미국과 중국이 남과 북의 정부에 대해 가했을 압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국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수 있도록 우선 미국이 강력한 방향 제시를 했다는 거, 또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 이런 열병식을 앞두고 전승절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평화를 깨는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바로 전날 <환구시보>에 열병식 행사를 저해하는 세력은 반드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나왔던 것이죠.
- <뉴스타파> 8월 27일자



게다가 “박근혜 2년 반 ···한 게 없다”는 평가(<한겨레> 8월 23일자)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마당에, 국제적으로 눈길이 쏠린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박근혜 자신의 힘으로 해결했다는 ‘공로’를 세우고 싶은 욕구도 있지 않았을까?


이번의 남북 극한 대치 상황에서 아주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로 다시 떠오른 것은 일부 매체들의 ‘북한 불바다’ 주장과 ‘언론상업주의’였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겠다. <조선일보>는 8월 21일자 사설에서 “불편과 희생을 각오한다면 북의 도발 습성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전쟁 제일주의’나 다름이 없다. 만약 이런 논조에 따라 남한이 북한을 향해 공중전이나 포격전, 또는 지상군의 돌격 등을 시작한다면 북한은 미사일이나 장사포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권을 공격할 것이다. 남도 북도 ‘불바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8월 21일 <TV조선>의 <뉴스를 쏘다>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즉각적인 보복과 응징이 있어야 하고 응징은 1대 10으로 해야 한다”고 극단적 발언을 했다. <월간조선> 편집장이라는 사람은 “단호함이 말로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런 식의 도발 패턴을 보이는 것은 제대로 된 대응 및 보복조치를 하지 않아서”라며 “장기적으로 상황을 매듭짓고 막으려면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북한이)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미디어오늘> 8월 22일자).


이밖에도 전역을 앞둔 병사들이 그 날짜를 미루면서 북한과 싸울 결의를 다지고 있다거나 ‘6·25 참전용사들’까지 군복을 입고 전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참전 의지’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등의 기사들이 ‘안보’와 ‘상업주의’ 그리고‘ 애국주의’를 적절히 얼버무린 내용으로 독자와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매체들은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역사적 결단’이라고 칭송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의 평화공존과 자주적 통일로 가는 길에서 언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맹목적 애국주의와 얄팍한 상업주의에 물든 언론을 정확히 비판하고 청산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