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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죽이고 유가족도 죽이려 들고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10월 07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딸은 ‘패륜’ 저지르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안락사’ 시켰다?


지난 9월 25일 숨을 거둔 농민 백남기는 주검이 되어서도 이 험난한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경찰과 검찰이 부검을 하겠다고 고집하면서 그를 두 번이나 죽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와 2녀 1남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열흘이 넘도록 빈소를 지키면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검·경의 기습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집권당의 국회의원, 자칭 ‘언론인’, 그리고 극우보수단체 대표는 말과 글을 통해 그들에게 정신적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검사 출신 새누리당 의원 김진태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백남기씨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적었습니다. 고인이 사망하기 6일 전 급성신부전증이 와서 가족에게 혈액 투석을 권했는데도 가족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아 사망하게 됐다는 겁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했다면 물론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백남기씨 딸은 어디 있었을까요?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중이었습니다. 이 딸은 아버지가 사망한 날 발리에 있으면서 페북에 “오늘밤 촛불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를 지켜주세요”라고 씁니다.”


MBC 제3노조 위원장인 기자 김세의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백남기의 죽음은 ‘안락사’라고 주장했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정한 딸이 있다. 아버지가 급성신부전으로 위독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투석치료를 하지 못했다. 바로 가족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차피 아버지의 사망일시만 바뀔 뿐이라고. 결국 아버지는 급성신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실상 아버지를 안락사 시킨 셈이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 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여행지 발리로 놀러갔다는 점이다. 모르고 간 것도 아니고사망 시기가 사실상 정해진 상황에서 말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공산당 역할을 했던 배우 이범수의 말이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


김진태와 김세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사회의 전통적 도덕과 윤리에 비추어 볼 때 백남기의 차녀 백민주화의 행동은 ‘천하의 패륜’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백민주화가 누구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발리에 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장녀 백도라지는 동생의 발리 방문이 ‘휴양’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명확히 밝혔다. 친정이 발리인 백민주화의 손위 동서가 새로 태어난 아들의 세례식을 발리에서 하려고 친척들을 초청했기 때문에 백민주화도 시부모, 남편,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거기서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들은 백민주화는 남편과 아들은 물론 시부모와 함께 9월 27일 한국으로 날아와 빈소를 지켰다. 김진태는 이런 사실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백민주화가 발리에서 “오늘밤 촛불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를 지켜주세요”라고 했다는 ‘소설’을 썼고, 김세의는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 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 여행지 발리로 놀러 갔다”고 단정해 버린 것이다.


극우단체인 자유청년연합 대표 장기정은 한술 더 떴다. 그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남기의 자식 백도라지, 백민주화, 백두산 이 세 명을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합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백남기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적극적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 치료를 거부하여 급성신부전이 와 사망케 한 것”이라고 주장한 뒤 “형법 18조 위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10월 11일 오후 2시에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기정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백남기의 세 자녀는 졸지에 ‘살인범’이 되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백남기의 유족은 지난 3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인의 죽음을 ‘병사’라고 발표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과장 백선하의 ‘결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도라지는 “(지난해 11월 14일) 아버지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응급의학과에서는 수술 자체가 불가하다고 말했고, 이후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한 번 해보자고 결정했다”며 “그런데 수술을 해서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생명 연장의 의미밖에 없다는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고 밝혔다. 백남기가 사경을 헤매던 317일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민단체 사람들과 문병객들은 가족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살리려고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다. 나라의 민주화와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헌신해온 아버지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자녀들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지난 3일 서울대병원·서울대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윈회는 백남기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주치의 백선하가 ‘병사’라고 주장한 데 반해 특조위 위원장 이윤성(법의학 교수)은 ‘외인사’라고 단정했다. 이윤성은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내 사망진단서 백선하에게는 안 맡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은 백남기에게 물대포를 쏜 충남9호 살수차의 CCTV 영상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다. 그 영상에는 물대포 직사를 당한 백남기가 쓰러진 뒤에도 3번이나 직사가 계속되었음이 명백히 나와 있었다. 실질적 살인행위에 희생됐음이 분명한 그를 두고 ‘병사’라고 우긴 백선하에 대해서는 달리 비판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의사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의사협회가 5일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논란 관련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는 “심폐 정지는 절대로 사망 원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고인은 “선행 사인이 뇌에 충격이 가해져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이므로 사망의 종류가 ‘병사’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쯤 되면 백선하는 자신이 가입해 있을 의사협회의 결론에 따라 ‘병사’라고 진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시인해야 옳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5일 백남기 사건에 관련된 상설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가족이 물대포 사건 당시 경찰 책임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있으니 야당들이 진상 조사에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고인의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특검법안에 반대했다. 나라 안팎에서 ‘살인정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백남기 사망의 원인 규명조차 거부하는 집권당의 태도를 누가 옳다고 보겠는가? 심지어 새누리당 의원 유승민조차 6일 부산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씨 사건은 공권력이 과잉진압해서 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보수와 진영논리를 떠나 이 죽음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생각한다면, 국가가 과잉진압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백남기의 죽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유가족조차 죽이려 드는 검은 세력은 당장 야만적 테러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에 보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