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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보내는 ‘슬픈 축제’와 ‘박근혜 퇴진’ 함성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11월 07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11·5 광화문’에서 떠올린 4월 혁명과 6월 항쟁


토요일인 지난 5일 오후 2시 세종대왕 동상 앞의 광화문광장에서 ‘생명평화일꾼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렸다. 연단 뒷벽에 모셔진 영정 안에서 고인은 가볍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약력 보고’를 맡은 그의 농민운동 후배는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두 딸과 아들을 자기 목숨보다도 아끼던 자상한 아버지’ ‘민주화와 대동세상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헌신해온 투사, 그러나 인정 많고 신명이 넘치던 선배”라고 그를 추모했다.


2만여 명이 좌석을 채우고 연도까지 꽉 들어찬 영결식장에는 ‘박근혜는 하야하라’ ‘살인정권 물러가라’ ‘국가폭력 끝장내자’ ‘책임자를 처벌하라’ ‘특검을 실시하라’ 등 세로펼침막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 겨레의 울긋불긋한 전통적 만장과는 다른 검은색 휘장이었다. 사회자 손영준(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해 노래하시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신 지 359일, 선종하신 지 42일이 지났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고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 이 변치 않을 약속을 하며 고인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맨 처음으로 추도사를 한 김영호(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는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권력의 총책임자인 박근혜는 사퇴해야 한다”고 우렁차게 외쳤다. 세 야당 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의 추도사가 끝난 뒤 마이크 앞에 선 고인의 장녀 백도라지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영결식장에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함께 싸워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 보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정권의 수명은 이제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경찰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충성하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식장 여기저기서 분노의 외침과 탄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합창단이 쌀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를 때 영결식장은 ‘축제의 마당’으로 변해 가면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살인정권 물러가라”는 함성이 거세게 울렸다. 마치 고인이 그렇게도 열망하던 민주·평화·대동세상을 향해 부르는 ‘진군가’ 같았다.


고인을 모신 운구차가 그의 고향인 전남 보성을 향해 떠나자마자 오후 4시께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시작되었다. 주최 측이 애초 10만 정도로 예상한 관중은 한 시간 남짓 만에 20만이나 되어 광화문 사거리를 넘어 시청 앞까지 차도와 인도를 가득 채웠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오후 5시 45분부터 행진에 나섰다. 선두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종로 1가에 이르기까지 20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도로가 인파로 메워졌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30~40대부터 70세를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잔치마당에 온 듯이 밝은 표정으로 행진을 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치면 모두가 목청이 터지라고 따라 불렀다. 아버지 어깨에 목말을 탄 대여섯 살배기도 구호를 따라 했다.


나는 그 군중의 파도 속에서 1960년 4월 19일의 서울시청 앞 광장을 떠올렸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학생 5백여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오후 1시쯤 그곳에 도착해 보니 2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는 “이승만은 하야하라”는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 3·15 부정선거와 그 뒤 자유당 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사람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 11월 5일, 광화문-종로3가-을지로 3가-퇴계로-서울시청 광장-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대행진은 완전한 축제 분위기였다. 군중은 ‘박근혜 퇴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맑고 밝은 표정들이었다. 6월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날인 1987년 6월 10일에도 20만이 한 군데에 모이지는 못했다. 자동차들이 요란하게 울린 경적 소리가 ‘전두환 정권 타도’를 대변한 셈이었다. 경찰의 최루탄을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의 장례식이 치러진 7월 9일에야 1백만으로 추산되는 군중이 연세대 앞부터 시청 앞까지 사람의 물결을 이루었던 것이다.


나는 지난 5일 저녁 언론계 동료들과 함께 행진 대열에 동참해서 걸어가다가 아주 특이한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4백여 명의 소년·소녀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라는 가로펼침막을 들고 씩씩하게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중고생혁명 추진위원회’, ‘중고생 연대’, ‘전국중고등학교총학생회연합’ 회원들로, 그날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중고등학생들의 집회’를 가진 뒤 행진에 나섰다고 한다. ‘일베’를 비롯한 극우 사이트들에는 그들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랐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뒤 참혹한 주검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16세 소년 김주열(마산상고 입학 예정)이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을 극우파 사람들은 모른단 말인가? 4월 19일 경무대(지금 청와대) 앞까지 용감하게 다가선 주역들 가운데 다수도 고등학생들이었다. 정의로운 혁명은 ‘불온한’ 것이 아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육(飼育)’을 당하고 있는 소년·소녀들,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갖은 ‘갑질’에 격분한 중고생들이 정치, 사회, 교육의 혁명을 부르짖는 것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대행진이 끝난 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김용옥(한신대 석좌교수)은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지금 ‘퇴진’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해결로는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국민의 깨인 의식이 여태까지 우리를 압제해 왔던 모든 권력을 거둬낼 수 있을 만큼 여러분의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될 때만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합니다.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이르러, 서울시청 일대에 70만 군중이 모였을 때 이명박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반성’하면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지난 5일 진보 매체를 비롯한 일부 방송이 생중계하는 ‘박근혜 퇴진 대행진’ 뉴스를 보고 있기나 했을까?


오는 12일(토)에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시민단체들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데, 50만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수십 개 시민단체가 결합한 ‘시민대행진 추진위원회’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후통첩! 박근혜는 11월 12일 정오까지 자진 사퇴하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날을 엿새 앞둔 6일 현재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지지율 5%의 ‘식물대통령’으로라도 남은 임기 16개월을 채우는 것이 그 자신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주권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재앙임이 분명하다. 박근혜는 지금 진행 중인 무혈혁명이 결국 그를 청와대에서 추방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내일이라도 스스로 그곳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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