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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파면 당했다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11월 14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11·12 평화 대행진’의 정치·역사적 의미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집회’는 100만 군중이 펼친 장엄한 ‘평화대행진’이었다.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걷는 젊은 부부, 서울 시내와 지역에서 모여든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 전국 여러 대학의 ‘민주동문회’ 회원들, 노동자, 농민, 빈민, 사무직에 종사하는 ‘넥타이 부대’,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 진보와 보수, 중도를 망라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단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의 바다’를 이루었다. 그 목표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인터넷방송과 종편, 그리고 국제 네트워크를 가진 미국의 CNN이 생중계한 장면들을 보면, 그날 낮의 행진과 밤의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잔치마당에 온 듯이 보였다. 내가 직접 목격한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2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민주주의국민행동을 비롯한 단체들과 5대 종단 종교인들이 주최한 시민대회에 참석한 1만여 명은 2시 30분께부터 대형 트럭을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했다. 2백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농악대’가 선두에 섰다. 꽹과리, 북, 징 등이 어우러져 신명 나게 풍악을 울리는 가운데 1km도 넘게 뻗은 대열에서는 끊임없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가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더러 “새누리당 해체하라”는 외침도 들렸다. 대열이 종로5가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어 광화문을 향할 때 연도에서는 ‘박근혜 퇴진’ 팻말을 든 시민들이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수백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정유라를 성토하는 모습이었다.


해 질 녘이 되자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종로, 을지로, 남대문, 서대문 쪽은 물론이고 골목까지 사람들이 들어차서 발길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에서 죽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살려야겠다는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사교(邪敎)집단’ 또는 ‘대국민 사기단’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박근혜·최순실 일파가 파괴한 헌정을 되살리고 진정한 민주·평화체제를 세우자는 100만 시민의 염원을 그 누가 어떤 힘으로 억누를 수 있겠는가?


나는 언론계 동료들과 함께 태평로 프레스센터 18층의 전국언론노조 사무실로 올라가서 청와대가 곧바로 보이는 창문을 통해 광화문 일대를 내려다보았다. 촛불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물결 속의 ‘한 방울’이 되려고 광화문광장을 향해 다가갔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아서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땀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누구도 몸을 부딪치는 이웃에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촛불집회 연단에서 조금 떨어진 교보문고 정문 앞에 이르니 마침 방송인 김제동의 열변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헌법을 흔드는 것은 내란”이라며 박근혜가 어떻게 헌법을 유린했는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하지 않고, 최순실 일가로부터 나오게 했다면 헌법 1조 1항 위반”이며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줬다면 헌법 제2조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았으니 헌법 제20조 2항 위반이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날 특히 두드러진 장면은 행진 때나 집회 때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폭력을 쓰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평화’와 ‘비폭력’을 외치던 것이었다. 밤 10시쯤 본 행사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쓰레기들을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외신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종편방송조차 ‘빛나는 시민정신’이라고 극찬했다. 그 어느 정치선진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뜻이다.


12일 집회에서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박근혜가 100만 민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퇴진으로 당론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박근혜를 끈질기게 비호해 오던 새누리당 대표 정진석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무너져 행정부 마비 상태가 예상된다”고 썼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비행기의 두 엔진 가운데 하나가 꺼졌다”며 “하나 남은 엔진은 국회다. 국민들의 성난 함성에 담긴 요구를 받아 안아 해결해야 할 책임은 이제 국회로 넘어왔다”고 단정했다. 박근혜 사퇴를 공식화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같은 날 청와대 대변인 정연국은 뜬구름 잡는 듯한 표현으로 박근혜의 ‘심경’을 전했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다할 책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인가? 극소수 ‘친위대’인 친박 말고는 모두 등을 돌렸는데 누가 박근혜의 ‘국정 정상화’를 도울 수 있을까?


박근혜는 2016년 11월 12일 자로 ‘대통령 파면 선고’를 받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국민이 ‘우상’으로 떠받들던 박정희도 역사의 무덤 속에 묻혀버릴 것이 분명하다. 이 무혈혁명, 명예혁명, 비폭력 평화혁명의 주역은 주권자 95%를 대변하는 1백만 군중이다. 1960년의 4월 혁명도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도 1987년의 6월항쟁도 이루어내지 못한 위대한 승리가 눈앞에 곧 펼쳐지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한국의 정치와 역사를 확 바꾸어버릴 대사건이 지금 대단원을 향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