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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가라앉고 세월호는 떠오른다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7년 01월 09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참사 이래 1,000일 한국사회 변혁을 이끈 유족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쯤 세월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직무유기로 승객 304명이 목숨을 잃고 9명이 실종된 그 초대형 참사 이래 1월 9일로 1000일이 되었다. 그 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근한 날씨 속에 토요 촛불집회가 열렸다. 60여만 명이 참여한 ‘세월호 참사 1,000일, 박근혜 즉각 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 청산-11차 범국민행동의 날’ 행사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을 안겨준 이들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 9명이었다. 연단에 오른 장혜진(20세)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해 주었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주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중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리를 이렇게 멀리 떨어지게 만든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러 왔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9명의 생존 학생들이 “저희를 보면 희생된 친구들이 생각날까봐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고백하자 숨진 학생들의 반 대표 부모 8명이 무대에 올라 그들을 포옹하며 진실 규명을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지난 1,000일 동안 ‘세월호’는 박근혜 정권의 ‘반생명적 야만’과 민주·평화를 갈망하는 주권자들이 주도한 ‘생명 존중 운동’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상징하는 핵심어였다. 새누리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 그리고 ‘청와대 방송’인 KBS·MBC 등 극우보수세력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려 들었으나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끈질기고 과감하게 그들에 맞서 싸웠다. 광화문광장에 둥지를 튼 유족과 ‘세월호 진실 인양 운동’ 진영 사람들은 단식으로 시작해서 팽목항부터 서울까지 행진, 청와대 앞 천막 농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근혜의 사죄를 받아내려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그들의 항의와 요구를 묵살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한국의 많은 주권자들은 물론이고 양심적 세계인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세월호 항쟁’이 없었다면 지난해 가을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질 수 있었을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대통령 임기를 14개월 가까이 보낸 2014년 4월 초순 실시된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박근혜 지지율은 57.0%였다. 그러나 5월 초순에는 44.0%로 급락했다. 세월호 참사가 주요 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2015년 1월에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논란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지지율이 33.0%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만 박근혜 편을 든 것이다. 지난해 9월 초순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된 뒤 11월 들어 박근혜 지지율이 4%까지 떨어져 사실상 ‘데드 덕’이 되고 만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 이래 2015년 11월 중순 경찰이 농민 백남기에게 물대포를 직사해 사경에 이르게 한 사건 등이 박근혜의 ‘반생명 체질’을 극명하게 입증함으로써 민심이 그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게 했음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 행적 불명’은 박근혜를 지난 1,000일 동안 끈질기게 괴롭혔다. 지난해 가을 야 3당이 발의해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시킨 탄핵소추안에서는 ‘생명권 보장(헌법 제10조) 조항 위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적 재난과 위기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른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오전 8시 52분 소방본부에 최초 사고 접수가 된 시점부터 당일 오전 10시 31분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국가적 재난과 위기상황을 수습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침몰 이후 한참이 지난 오후 5시 15분경에야 대통령은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하여 전혀 상황 파악을 못하였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그 순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고 결정권자로서 세월호 참사의 경위나 피해 상항, 피해 규모, 구조 진행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재난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위와 같이 대응한 것은 사실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할 것이고 이는 헌법 제10조에 의해서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5년 초 특별법에 따라 출범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을 갖은 방법과 수단으로 방해하다가 결국 2016년 9월 말에 강제로 해체해버렸다. 침몰 원인을 조사하는 데 필수적인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도 온갖 구실로 미루어 왔다. 그러자 민간인인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지난해 12월 25일 유튜브를 통해 다큐멘터리 <세월호 X>를 공개했다. 무려 8시간 49분이나 되는 동영상 업로드에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과학적·합리적 추론이 담겨 있는데, 그 가운데 핵심은 ‘괴물체의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이다. 그는 과학자문인 김관묵(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과 협업을 통해 그 가설을 제기했다. 다수 언론에는 그 괴물체가 잠수함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나왔다.


특조위 해체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 길이 막히자 유족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 7일 11차 촛불집회 무대에서 ‘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국민조사위)’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이제 세월호의 진실은 피해 당사자들과 ‘촛불혁명’의 주역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재판을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헌재가 야 3당의 탄핵소추 사유 12개 항목을 5개로 압축한 것은 결정을 신속히 내리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된다. ‘최순실 등 비선 조직에 의한 국정농단’,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가운데 단 항목이라도 인용되면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것이다.


지난 7일 촛불집회가 끝날 무렵 1,000개의 노란 풍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원하는 뜻이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윤민석 작사·작곡)라는 노래도 울려 퍼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지금 세월호가 누워 있는 저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와 반대로 참사의 진실을 담고 있는 세월호는 하늘을 향해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가 역사적 심판을 받을 날이 멀지않은 것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