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여왕’ 박근혜와 ‘상왕’ 최순실의 4년

-무너진 국가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오는 2월 25일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4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임자인 이명박으로부터 정부를 물려받은 박근혜는 가뜩이나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민주공화국’을 ‘유사(類似) 전제군주제’로 전락시켰다. 그 정점에는 박근혜가 아니라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이 버티고 있었다.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박근혜와 최순실이 지난 4년 동안 국정을 농단해온 실상을 보면 두 사람은 “이 나라는 전제군주제이다”, “이 나라의 주권은 군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군주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전제군주제는 군주가 국가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국가기관은 오직 군주의 권력을 집행하는 하수인에 불과한 정치체제이다. 봉건왕조 시대에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뒷전에서 지내는 사람을 ‘상왕’이라 일컬었지만, 조선조 초에 그렇게 하지 않고 병권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태종에 비유해 “상왕 노릇 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21세기 특유의 ‘유사 전제군주제’가 펼쳐지고 있던 한국에서 ‘여왕’인 박근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실질적 권력은 ‘태종보다 강력한 상왕’ 격인 최순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지난해 9월 하순 이래 폭죽처럼 터져 나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통해 여실히 입증되었다. 도대체 박근혜는 최순실이 아니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연설문 작성부터 ‘통일대박’ ‘창조경제’ ‘문화융성’ 등 정권의 간판이 된 정책 세우기, 그리고 청와대와 정부 주요 부서들의 요직 임명은 물론이고 K·미르 재단 설립에 이르기까지 박근혜가 종(從)이고 최순실이 주(主)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실로 굳어졌다. 박근혜가 온갖 농단을 위해 한 일이라면 재벌 총수들을 직접 만나 최순실 일파가 ‘기획’한 사업들에 ‘뇌물성 투자’를 강요하거나 최순실이 지목한 ‘나쁜 공직자들’을 해임하거나 좌천시킨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였다.

최순실은 ‘상왕’처럼 청와대에 상주하지는 않았지만, ‘보안손님’이라는 이름으로 경호실의 검문 없이 ‘궁’에 무시로 출입하는가 하면 행정관인 윤전추와 이영선을 ‘몸종’처럼 부리면서 박근혜의 옷은 물론이고 수상한 각종 의약품까지 공급했다. 그런 경우에는 상왕이 아니라 내수사(內需司)의 ‘으뜸 내시’ 같기도 했다.

박근혜가 지난 4년 동안 집무실에는 어쩌다 한 번씩 출근하고 주로 관저에 머문 것은 최순실에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해서 ‘국사’를 사사로운 일처럼 운영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많은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불만을 토했을까?

박근혜와 최순실이 40여년에 걸쳐 지탱해온 ‘사익(私益)공동체’를 국가라는 조직에 대입(代入)하는 바람에 헌법과 법체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는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4·7·4 정책(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을 내세웠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00% 국민대통합’ 약속은 ‘4% 국민통합’이라는 비극적 상황 앞에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최순실이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딸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부정입학 시킨 사건은 엄청난 사교육비까지 들이면서 밤을 낮 삼아 공부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2016년 말 현재 가계부채 총액이 1200조를 훌쩍 넘는 비상사태롤 초래했다. 부질없는 가설이기는 하지만, 박근혜와 최순실이 철저히 사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거기 쏟은 노력의 절반이라도 건전하게 국가를 운영하는 데 ‘투자’했다면 ‘헬조선’이 무간지옥으로 변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 윤호중은 지난 14일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악의 적자 정부이고, 역대 최악의 조세평형 파괴 정부”라면서 “박근혜 정부 4년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허수아비 여왕’과 ‘상왕’의 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지난 16일 박영수 특검에 의해 밝혀졌다. 지난해 4월 18일부터 10월 26일까지 두 사람이 청와대 행정관 윤전추가 만들어준 차명폰으로 무려 570 차례나 비밀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국정농단 피의자인 최순실이 지난해 9월 독일로 도피한 뒤에도 10월 26일까지 박근혜와 무려 127회나 전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내용이 어떻든 간에 명색이 ‘국가원수’라는 사람이 실정법을 어기면서,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몰린 인물과 하루에 세 번꼴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탄핵 심판에서 인용 선고를 내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지난 18일 JTBC가 단독으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최순실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 이후 추진된 이른바 ‘생존 수영 교육’까지 돈벌이에 이용하려 들었다고 한다.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때문에 노랑색을 극도로 싫어했다는 그가 돈에 걸신(乞神)이 들렸는지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직무유기로 희생된 학생들을 ‘본보기’ 삼아 실시하려던 ‘생존 수영 교육’까지 주도하려 했다니 탐욕의 끝을 짐작할 수가 없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집’인 국가는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소야대 체제의 야당들은 박근혜를 탄핵소추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파동 당시의 아픈 기억이 트라우마로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권자들은 야권의 기회주의와 무책임한 태도를 방관하지 않고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분연히 일어섰다.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토요촛불집회는 지난 18일 16차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연인원 1200만여명이 참여하는 ‘주권자혁명’으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야권은 새누리당의 ‘반박’과 함께 박근혜를 탄핵소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헌재가 3월 이전에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인용 선고를 내릴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야권은 서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려고 격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져온 극우보수정권을 민주평화정권으로 바꾸는 것은 야권의 시대적 사명이자 ‘촛불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나 지금 대선을 향한 경쟁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야권 후보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교육·국방은 물론이고 파탄에 빠진 남북관계를 혁명적으로 개선할 정책과 방안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할 의지가 없다면,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기 정권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9년 동안 태산처럼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를 치우다 임기 5년을 보낼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하 10도 안팎의 혹한 속에서도 촛불을 들고 나서는 시민들은 어떤 후보가 ‘촛불혁명’을 진정한 ‘주권자혁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인물인지를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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