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은 주권자혁명의 시작일 뿐

-야권이 하나 되어 민주평화정부 세워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선고한 2017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 헌정의 역사에 빛나는 기념탑을 세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온 80% 안팎의 국민은 TV로 생중계되는 헌재의 선고심판을 보면서 ‘혹시 기각이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헌재소장 권한대행 이정미가 ‘선고문’ 초반부를 낭독하면서 박근혜 탄핵사유 가운데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 의무’에 대해 실질적으로 ‘면죄부’를 주자 탄핵 찬성자들은 바짝 긴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이정미는 ‘선고문’의 핵심적 대목들을 힘주어 읽기 시작했다.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피청구인(박근혜)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파면’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전국에서 TV 화면을 지켜보던 ‘촛불혁명’ 참여자들과 탄핵 찬성자들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탄핵소추를 당한 뒤 석 달 동안 청와대에서 담화문이나 극우적 영세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나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일했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 어떤 세력이 나를 엮은 것이다”라는 투의 거짓말과 억지 주장을 펼치던 박근혜는 헌재의 ‘파면’ 선고와 동시에 ‘식물 대통령’에서 자연인이 되어 청와대를 떠나게 되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박탈당했다고 해서 ‘촛불혁명’이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할 것인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파면은 주권자혁명의 시작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2013년 2월 25일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1,530일 동안 대한민국은 그와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때문에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사조직’으로 전락했다. 정치, 경제, 외교, 남북관계, 사회, 교육, 문화예술, 노동, 농민, 빈민 가운데 어느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박근혜가 약속한 ‘100% 국민대통합’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박근혜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철저히 파괴했다. 1961년 5월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아버지 박정희가 18년 동안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국가원수’라는 인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친일파들이 저지른 매국·매족행위를 교과서에서 지우는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을 강행하다 참담한 망신을 당했고, 박정희가 자행한 공작정치와 인권 탄압, 언론자유 억압을 ‘모범’ 삼아 갖은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정원이 대법원장을 사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근혜 밑에서 철저히 어용화한 사법부의 상층부는 박정희가 1975년 5월에 발동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놓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뒤집어 버렸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박정희를 여전히 ‘숭배’하는 세력과 지지자들 덕분에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헌재의 파면 선고 때문에 박근혜는 아버지와 더불어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연인이 되는 순간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은 사라지고 언제라도 검찰에 연행되어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단순히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저지른 부정과 비리, 국정농단 때문에만 사법처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기간에 당시 대통령 이명박이 지배하던 국정원과 보훈처, 그리고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부정’에 힘입어 ‘당선’되는 과정에서 그가 이명박과 어떤 ‘뒷거래’를 했는지도 검찰과 야권이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헌재가 박근혜를 파면한 순간부터 60일 안에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져야 하는데, 5월 9일이 가장 적절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현재 지리멸렬한 집권 자유한국당과 어정쩡한 야당인 바른정당 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촉박한 대선에 대비해 치열한 선거운동을 벌일 것이다. 이제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명심할 점이 있다. 지금처럼 분열된 상태로 정권교체 경쟁에 몰두한다면 그 어느 야당이 집권해도 ‘여소야대’ 체제를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사사건건 적폐 청산과 개혁에 딴죽을 걸 것이므로 명목상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과 집권당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태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데 시간을 허비하다 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처참한 상황을 예방하려면 야권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민주평화정부를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3·1절 98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 ‘2017민주평화포럼’ 주관으로 4,000여 명의 재야인사들과 시민들이 발표한 ‘민주평화정부 수립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3·1국민주권선언’의 결론을 야당 대선 주자들이 주의 깊게 볼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촛불 민심’을 받들어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대개혁을 이룰 수 있는 민주평화정부를 건설하는 과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새로운 국민운동체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국민운동체는 촛불혁명을 주도한 각계각층이 민주평화정부 수립을 위해 힘을 모을 뿐 아니라 정권교체 이후 새로운 정부가 적폐 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민운동체는 시민 중심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되어야 하며 세대와 지역, 부문의 대표성을 망라하고 일터와 마을,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가운데, 민주적 야당과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진정한 민주평화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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