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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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타파 4] 국민연금이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면?

정재원 프로필 사진 정재원 2015년 01월 20일

다큐멘터리 연출, 장애인 활동보조인,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버사령부 관제요원 등을 하며 이십대를 보내다 대학을 11년만에 졸업. 경제, 과학기술, 인권 분야 관심.

수습타파 네 번째 이야기. 오늘이 수습 생활 마지막 날이다. ‘수습타파’라는 이름으로 취재 후기를 쓰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마지막 글은 국민연금에 관한 얘기다.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해 취재를 하다가 그 끄트머리에서 국민연금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먼저, 취재를 하다가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케이블기사 이모 씨. 씨앤앰이라는 케이블TV 회사에서 갑작스레 해고된 뒤 복직을 위한 노숙농성이 여섯달 정도 진행되는 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신용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돈도 없어서 간신히 먹고 살다가, 결국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이 씨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교대로 노숙을 하는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거의 매일 노숙농성장에서 잠을 청했다.




▲ 씨앤앰 케이블 기사들의 노숙 농성장 ▲ 씨앤앰 케이블 기사들의 노숙 농성장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료 케이블기사 또다른 이모 씨. 회사에서 쫓겨난 직후 처음에는 대출을 받아서 근근이 생활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채업자한테까지 손을 벌리게 됐다. 대출금을 계속 돌려 막다가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어졌다. 거리의 농성장에서 잠을 자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가면 온 몸을 조여 오는 생활고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가만히 듣고있기 힘든 정도였지만, 이 사연들은 내가 같이 노숙을 하며 이틀밤 동안 들은 이야기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원래 박봉이었던데다 일하다 다친 비용도 개인 잘못으로 떠넘기기 일쑤였기 때문에 돈을 제대로 모을 수 없었던 케이블기사들. 그러다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 몇 달 째 노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투쟁이 시작된 후에 이혼을 한 사람도 있었다.


씨앤앰 투쟁은 결국 지난해 12월 30일 극적인 복직 합의로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해고에서 농성에 이르는 그 거친 폭풍이 개별 노동자들의 일상에 남긴 흔적은 깊고 날카롭다. 그 상처들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MBK파트너스와 ‘찍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MBK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기억해야 한다. 일자리를 잃었던 케이블기사들은 씨앤앰의 실질적 주인이 MBK파트너스라고 말한다. 대주주이고 실제 자본을 운용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투자자들에게 매각차익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내년까지는 씨앤앰을 매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을 구조조정했고,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게 된 원인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MBK파트너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자자들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받아 그 돈으로 기업을 사고팔며 차익을 남기는 금융자본이다. MBK파트너스가 처음 널리 알려진 건 2013년 ING생명을 인수할 때였다. 흔히 투기적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모펀드가 수많은 국민들의 쌈짓돈을 보유한 보험회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는 이 부분에 대한 별다른 검토 없이 승인해줬다.


물론 늘 걱정없는 정부당국과 달리 ING 생명의 직원들은 걱정이 많았다. 외국자본이 헐값으로 국내 회사를 사들인 뒤 사람들을 잘라내고 비싼 값에 되파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자주 벌어졌으니까. 이에 MBK파트너스의 윤종하 부회장은 2013년 10월 ING생명 인수를 앞두고 임직원들에게 인력감축이나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종하 부회장. 앞줄 가운데가 김병주 회장이다. ⓒMBK파트너스 ▲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종하 부회장. 앞줄 가운데가 김병주 회장이다. ⓒMBK파트너스

하지만 곧 구조조정 전문가로 유명한 전 알리안츠 생명 사장 정문국 씨가 회장으로 왔다. 그리고 곧 대규모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여기서 ‘희망’퇴직이라는 용어에 유의해야 한다. 까딱하면 속기 쉽다. 원래 뜻은 아니었겠지만 요즘 희망퇴직은 내가 희망해서 퇴직하는 것이 아니다. 사측이 희망하는 사람을 해고시키는 게 요즘 유행하는 희망퇴직에 가깝다. 찍어서 내보낸다고 해서 ‘찍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됐다.그 ‘희망’퇴직 면담 과정에서 임신 6주차의 여직원이 수차례 퇴직 압박에 못 이겨 쓰러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MBK파트너스는 인건비라는 고정비용이 줄어든 좀 더 ‘효율적인’ 회사로 ING생명을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MBK의 감춰진 ‘쩐주’들이 궁금했다


MBK파트너스 같은 사모펀드는 자기 돈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 감춰진 '쩐주'들의 정체가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씨앤앰 문제를 들여다보다가 '토종'자본임을 주장하는 MBK파트너스의 쩐주들이 누구인지가 정말 궁금해졌다. 그들의 주장대로 '토종'자본이라면 국내의 손꼽히는 큰 손들이 들어와 있을 것 아닌가.


그걸 찾다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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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국민연금이다. 이 사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발간하는 연례 보고서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나와있었다.


나는 국민연금이 지금까지 MBK파트너스에게 얼마나 돈을 대주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MBK파트너스 측에 물어봤지만 물론 소득이 없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측에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뉴스타파가 국민연금의 탈법적 기금운용을 비판한 마당에 순순히 알려줄 리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유독 비밀주의가 심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문제에 같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의원실을 물색했다. 돌고돌아 이목희 의원실에서 MBK파트너스와 국민연금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곧 국민연금의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된 몇 가지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국민연금 측에 요청했다. 과연 자료가 올까. 국회의 요청에도 여러 차례 비밀이라며 자료 협조를 거부해온 그들이었다.



투기자본의 ‘쩐주’ 국민연금


처음 요청을 하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기대를 거의 내려놓고 있었을 때쯤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다.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국민연금 측이 제공한 자료에는 의외로 풍부한 사실이 담겨있었다.


국민연금은 2011년 팬아시아(Pan-asia) 펀드를 런칭하면서 MBK파트너스에 1,795억을 맡겼다. 이것이 MBK파트너스에 대한 국민연금의 첫 번째 출자였다. 그후 2012년에도 1,592억을 출자했고, 이듬해에도 304억을 MBK파트너스에 맡겼다. MBK파트너스에 대한 출자총액은 3,691억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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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파트너스와 씨앤앰의 재무적 연결고리에 직접적으로 돈을 대기도 했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앰을 담보로 잡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씨앤앰을 사들이는 신기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게 요즘 사모펀드들이 많이 사용하는 차입매수라는 기법이다.) 이것도 어쨌든 빚이어서 갚긴 갚아야 하는데, 2012년 대출 만기가 다가오자 MBK파트너스는 한 번 더 대규모로 돈을 빌려 상환을 미룬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3,600억을 빌려줬다.


결국 투기자본으로 의심받고 있는 MBK파트너스에 국민연금이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총액은 7,291억에 이른다.


사실 투기성이 있는 자본에 국민연금이 높은 이익을 노리고 돈을 댄 것이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 들어 소위 ‘먹고 튀는’ 투기자본으로 유명했던 이름들이 세 개 있었다. 칼라일(Carlyle), 뉴브릿지캐피탈(Newbridge Capital), 론스타(Lone Star)가 그것이다. 이중 칼라일은 편법으로 인수한 한미은행을 3년여 만에 씨티그룹에 팔아 배당금 포함 7107억원의 차익을 남겼고, 뉴브릿지캐피탈은 5년 만에 제일은행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팔아 1조1500억원을 남겼다. 당국이 제대로 세금을 받아내지도 못한데다 투기자본의 먹튀를 규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적 수단이 없어 당시 큰 문제가 됐었다.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칼라일 그룹 본사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칼라일 그룹 본사

국민연금이 이 과정에 개입돼 있다. 국민연금은 2000년 이후 칼라일에 4번에 걸쳐 552만불의 돈을 넣었다. 그리고 뉴브릿지캐피탈의 모회사라 할 수 있는 TPG Capital에 마찬가지 기간동안 6번에 걸쳐 603만불의 돈을 대줬다. 이 투기자본들이 한국에 들어와 막대한 차익을 내고 '튀었던' 기간에 국민연금이 이들의 쩐주 노릇을 한 것이다.



눈물의 비디오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휩쓸고 지나간 직후였던 1998년 봄. <눈물의 비디오>로 불렸던 영상이 세간에 알려졌었다. 제일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게 된 직원들의 눈물을 담은 영상이었다. 이때 4천 명이 감원당해 거리로 나앉게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투기자본 칼라일은 4천 명의 정리해고와 14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겨우 정상화된 제일은행을 헐값에 구입했다.




▲ <눈물의 비디오>의 한 장면 ▲ <눈물의 비디오>의 한 장면

비슷한 일이 지금도 반복된다. MBK파트너스의 '매물'인 씨앤앰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반년 넘는 투쟁을 거치는 동안 일상의 경제적 기반을 잃었다. 그 중 두 사람은 눈발 흩날리는 25미터 상공의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다가 몸까지 많이 상했다. 금융자본이 돈놀음을 하는 자리에는 이렇게 늘 약자들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여기 자본주의 세계의 ‘어깨’들 투기판에 국민연금이 국민들 쌈짓돈을 밑천삼아 끼어들어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의 국민연금 비판보도 이후,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 보도를 맡았던 이유정 선배에게 밤 열한시반에 전화를 걸어 뉴스타파의 보도가 ‘국익’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이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좋다. 그들이 연금의 수익률을 위해 조세피난처에서 돈을 굴리고 투기자본에게 돈을 대주면서까지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 투기자본이 결국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그들이 말하는 국익의 실체는 무엇일까. 나쁜 기업이면 불매운동이라도 하겠는데 국민연금은 보이콧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국민'연금이면 그에 맞는 최소한의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내 생각에는 그게 국익이다.


* 이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외 사모펀드 투자를 총괄하는 국민연금 윤영목 대체투자실장과 대화를 했다. 그는 앞으로 기금운용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고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