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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타파 1] 쌍용차…2000일 희망의 파기 환송

정재원 프로필 사진 정재원 2014년 11월 22일

다큐멘터리 연출, 장애인 활동보조인,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버사령부 관제요원 등을 하며 이십대를 보내다 대학을 11년만에 졸업. 경제, 과학기술, 인권 분야 관심.








편집자 주: 정재원 기자는 뉴스타파에 들어온 지 3주 된 풋내기 수습기자입니다. 선배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취재 현장을 헤매는 정재원 기자의 수습 일기를 <수습타파>라는 이름으로 가끔 공개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1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 앞. 수많은 카메라들이 시선을 모으고 있는 곳에 얼굴이 까맣게 탄 몇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취재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오늘 좋은 판결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득중 쌍용차 노조 지부장의 말이었다. 그 옆에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2002일동안 함께 싸워온 동료들이 서 있었다. 거리에서, 철탑 위에서, 공장 앞에서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오늘을 향해 달려온 그들의 표정에서 곧 다가올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감이 읽혔다.


입사 3주차의 수습기자인 나는 대법원이라는 곳에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 본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이 갖는 그 권위의 무게 만큼이나 육중한 건물을 끼고 돌아 제2호 법정이라는 곳을 어렵게 찾아갔다. 첫 인상이 특별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 모였던 곳이 여기구나. 이 자리에서 울고 웃었을 사람들의 진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배어나는 듯 했다.




▲ 법정 문이 열리기 전, 김득중 지부장이 기자들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후 2시가 됐다.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시간. 지부장을 비롯한 몇 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이 법정에 들어가고, 다수는 그들을 배웅하며 밖에 남았다. 나는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난 2월 고등법원에서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이미 받았기에 모두의 기대감은 컸다. 판결이 나오면 법정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밖으로 문자를 주기로 했다.


이십 여 분 쯤 시간이 흘렀을까. 수능날 찾아온 한파에도 햇볕에 몸을 녹여가며 두런두런 판결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한 곳으로 모였다. 기자들이 가장 먼저 냄새를 맡고 뛰어갔다. 노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려하고 있었다. 아직 문자가 안 왔는데… 검은 코팅이 된 유리문 너머로 쌍용차 1호 구속자 김정욱 씨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 눈물의 의미는 어느 쪽일까. 수습기자의 어설픈 직감이 작동했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판결문을 정독하다


파기환송. 해고가 무효라는 고법 판결은 틀렸으니 다시 심리하라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이렇게 사건이 돌아오면 고법이 대법의 의견을 거스르는 경우는 드물다. 옳고 그름을 다퉈 당당하게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해고자들의 꿈은 사실상 여기에서 스러졌다.


지난 2월,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고법의 판결문은 명료했다. 꼼꼼하게 검토된 양측의 의견들이 중언부언이나 말놀림 없이 간결하게 정리돼 76페이지짜리 판결문에 담겨있었다. 회사 측과 해고 노동자들이 다퉜던 하나하나의 쟁점들은 달리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수준으로 깊이 검토돼 있었다. 수습기자가 돼 처음 정독해 본 판결문에서 나는 명료한 논리와 경제적 문장들이 가진 새로운 미학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대법에서는 어떻게 고법이 낸 의견들을 뒤집을 수 있었던 걸까. 어떤 법리로 그게 가능했을까.


그래서, 대법원에서 기자들에게 나눠 준 판결문 요약본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계속 같은 문서를 보고 있자니 “너 조는 거 아니지?”하는 선배들의 눈치를 애써 외면하면서, 대법원 판결 내용들을 고법 판결문과 비교해서 두 시간 동안 줄을 쳐가며 읽었다. 아 그런데, 내가 부족한 탓이어서 그렇겠지만, 게다가 내가 아직 기자가 덜 된 탓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간단한 것 딱 두 가지만 적어보겠다.




▲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소송의 고등법원 판결문




틀린 판단도 존중하라?


정리해고가 정당한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리해고를 할 만큼 회사에 긴박한 경영상의 문제가 있었는가. 둘째는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회사가 충분히 했는가이다.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회사가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자를 수 없게 만드는 법적 견제 장치인 셈인데, 이 부분에 대한 고법과 대법의 해석이 달라 판결도 달라졌다. 둘이 계급장 떼고 1대 1로 싸운다고 생각하고 양 쪽의 논리가 어떻게 맞서는지 살펴보자.


쌍용차는 회사 형편은 어려운데 인건비가 높고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때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가 HPV(Hours Per Vehicle, 차 한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였다. 고법은 판결에서 쌍용차가 인용한 HPV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차종에 따라, 즉 대형차인지 소형차인지, 승용차인지 SUV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만약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할 경우 차종별로 HPV를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HPV 만으로 쌍용차의 생산효율성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법은 이런 어설픈 HPV 수치를 바탕으로 산출한 정리해고 인원에 대해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646이라는 해고 인력을 산출하는데 HPV가 강력한 근거가 됐다면 여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쌍용차가 주장한 HPV 수치에서 대법이 어떤 “상당한 합리성”을 찾아냈는지 궁금하다.




해고 후의 해고 회피 노력?


회사가 정리해고를 피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가 역시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여기서 쟁점은 무급휴직 조치다. 어쨌든 고용관계는 유지하면서, 임금 없는 휴직 상태로 회사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좀 기다려달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고는 피해보자는 적극적 노력이다.


하지만 만약 무급휴직이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에 있었다면 이걸 해고 회피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쌍용차의 무급휴직은 노조와 사측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정리해고 이후에 시행됐다. 고법은 판결문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였는지의 여부는 정리해고를 할 당시의 사정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정리해고 이후의 사정을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였는지의 직접적인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해석을 전혀 다르게 했다. 대법 판결의 요지는, 무급휴직은 고육지책이므로 정리해고 전이든 후든 일단 했으면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회피”라는 건 어떤 사건이 다가오기 전에 시도해야 의미있는 것 아닌가. 이미 한 번 해고의 쓰나미가 몰아쳐 지나갔는데 뒤늦게 실시한 무급휴직도 해고 회피 노력으로 쳐주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동의하기 힘들다.




▲ 쌍용차 해고자들이 2013년 171일간 벌였던 고공농성의 현장 ⓒ 참세상




죽음의 번호표


이제 막 기자의 세계에 들어와 법원을, 경찰을, 검찰을 들여다보게 된 수습기자의 입장이란 으레 그러더라는 “업계의 통념”보다는 아직 평범한 사회인의 상식에 가깝다. 그래서 더욱, 이렇게 간단히 정리해 놓고 보면 좀 어이없다 싶은 결론들이 대법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당황스럽다.


내가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 데에도 쌍용차 사건은 큰 영향을 줬다. 권력과 자본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가를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잘 보여줬다. 그리고 언론의 침묵이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최소한 방조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해 아프게 느꼈다. 그래서 더욱, 사법부가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돼 주기를 바랐다. 지난 고등법원 판결이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 내부에서 제기한 문제 의식과 팩트조차도 명료하게 반박하지 못하는 판결을 대법원이 내놓고 있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사법부에 깊숙이 다가가 목격하게 된 그들의 맨얼굴이었다.


판결이 나온 뒤 여럿이 웅크려 끌어안고 울던, 얼굴 까만 아저씨들이 자꾸 떠오른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지금까지 자살로,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숫자가 스물다섯에 이른다. 동료들의 상주 노릇을 하던 아저씨들이 또다시 죽음의 번호표를 받아 들게 될까 싶어 벌써 겁이 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제도적 수단을 통해 기업의 무차별적인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어졌다. 이것이 전태일 사후 40여 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 노동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