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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타파 2] 광화문 ‘니빠쟁이’들의 밤

정재원 프로필 사진 정재원 2014년 11월 23일

다큐멘터리 연출, 장애인 활동보조인,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버사령부 관제요원 등을 하며 이십대를 보내다 대학을 11년만에 졸업. 경제, 과학기술, 인권 분야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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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 투쟁은 낭만이 아니다. 비닐 한 장으로 아스팔트의 차가운 냉기를 막을 수는 없다.


수습타파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엔 노숙을 좀 했다.

씨앤엠이라는 회사가 있다. 국내 3대 케이블TV사업자(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엠) 중 하나여서 몇 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일선 기사 아저씨들이 7월부터 광화문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영하를 넘나드는 날씨에,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은 열흘 전부터 25미터 높이의 서울신문 전광판 꼭대기에 올라가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미 많은 매체들이 보도를 했다. 친절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8년 씨앤엠을 사들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내년에 씨앤엠을 매각하려고 준비 중이다. 하지만 유료방송 시장에 LGU+, SK텔레콤, KT 등 통신업체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케이블방송인 씨앤엠의 가입자 수가 줄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씨앤엠의 시장가치가 떨어졌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로 뛰던 비정규직 케이블 기사들이 이 과정에서 직장을 잃었다.


씨앤엠 해고자들의 문제를 다뤄보기로 마음먹고서 내가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미 몇몇 언론사의 베테랑 기자 선배들이 꼼꼼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나. 약간만 검색하면 몇 년 전부터 쌓인 수많은 관련기사들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수습기자의 패기로) 농성하는 기사 아저씨들 틈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영하를 넘나드는 온도에 냉바닥에서 잠을 자며 싸우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왠지 거기에는 머리에 빨간 띠를 묶은 팔뚝 굵은 아저씨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기대는 곧 여지없이 깨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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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K파트너스 본사가 위치한 광화문의 서울 파이낸스 센터 빌딩




니빠쟁이들의 밤


아저씨들은 스스로를 ‘니빠쟁이’라고 불렀다. ‘니빠’는 케이블을 절단하는 도구인 ‘니퍼’를 일컫는데 자조적으로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니빠쟁이 아저씨들은 두툼한 짐가방을 싸들고 나타난 기자를 반겨줬다. 첫날 우연찮게 맥주를 한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편하게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하루를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닐막 안의 습기와 바깥의 냉기 때문에 침낭에 이슬이 내렸다. 축축이 젖은 침낭을 들춰내고 일어나니 영하의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잠은 잘 자지 못했다. 광화문 거리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건물 불빛들은 한밤에도 거리를 대낮처럼 밝혔다. 번쩍이는 불빛과 스쳐가는 자동차 소리가 번번이 잠을 깨웠다. 어젯밤 술을 한 잔 했던 욱선 형이 눈을 가리라고 담요를 접어준 까닭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비닐막을 걷어내고 나오니 니빠쟁이 아저씨들이 춥지 않았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잘 잤다고 말했다. 그렇게 140일을 노숙한 사람들이 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중 두 사람은 25미터 높이의 전광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래는 노숙농성을 함께하면서 이야기 나눴던 니빠쟁이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전기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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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범(38) 씨와 정욱선(38) 씨.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친구다.


서른여덟 살 신인범 씨는 두돌맞이 딸을 가진 아빠다. 어릴 때 본 일산의 풍경이 너무 좋아보여서 일산에 사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산 쪽의 케이블 회사에 취직했고 신혼집도 이쪽에 마련했다. 입사했을 때 번듯한 대기업 계열 회사의 정규직이었던 그는 몇 년만에 하청회사의 계약직이 되었고, 결국 그 회사가 폐업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 거리에 나온 씨앤엠 케이블기사 대부분이 겪었던 과정이다.




질문 : 가족도 있고 아이들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나와 계시면 아내분이 좀 쓸쓸해하실 것 같아요.


신인범 : “와이프와 자식은 너무 힘들어하고 나 역시 힘들지… 하지만 그게 현실인거고, 현실을 이겨야 하는 게 또 우리 현실인 거고…”





정욱선 씨는 인범 씨와 동갑내기 친구다. 일산 쪽에서 씨앤엠 케이블TV의 설치와 AS를 담당하던 하청업체 시그마에서 같이 일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질문 : 노숙농성 시작하시고 나서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드셨어요.


정욱선 : “만약 여기서 자고 있다는 걸 알면 어머니 같은 경우 당연히 눈물이 나겠죠. 가슴이 너무 아프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을 못 드려요. 여기서 자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아요…”





마흔 한 살 김태성 씨는 씨앤엠이 생기기 전부터 지역 케이블TV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모두가 정규직이었던 그때는 영업직이든 설치기사든 모두 한 팀이라는 느낌으로 동료애를 가지고 일을 했다고 한다. 고용불안에 수시로 인력이 바뀌는 지금은 꿈 꿀 수 없는 일이다. 듬직한 체구의 그는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고 했다.




질문 : 위험한 일이 많다고 들었어요. 다리가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혹시 일하다가 다치신 건가요?


김태성 : “쭉 미끄러지는데 이대로 죽겠다 느낌 드는 순간에, 수채 구멍이 있었어. 수채 구멍에 다리가 들어가는 순간 부러지고, 부러지면서 내가 안 떨어진 거지.”





2박3일간 만났던 기사 아저씨들은 “전기를 먹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케이블 연결을 위해 전신주에 오르거나 지붕의 전선들을 만져야 하는 일이 잦은데 그러다가 감전이 되는 것이다. 손에 고압의 전류가 흐를 때 그들은 실제로 팔을 지나 심장을 관통하는 전류의 흐름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옥상에서 떨어지든 감전을 당하든 업체들은 기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감전 위험이 높은 비 오는 날에는 두 배의 임금을 줄 테니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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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농성장의 아침. 왼편에 파이낸스 센터가 있고 멀리 고공농성이 진행 중인 전광판이 보인다.




약자에게 가혹한 경제


노숙을 하고 돌아와 며칠 만에 집에 갔더니 공교롭게도 전날부터 인터넷이 안 된다고 한다. 우리 집 역시 3대 케이블TV 사업자 중 한 곳인 CJ헬로비전에서 서비스하는 인터넷에 가입해있다. 서비스를 요청하면 아마 엊그제 노숙 농성장에서 만났던 형들과 똑같은 상황을 견디고 있는 기사 아저씨가 찾아올 것이다.


CJ헬로비전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분도 이름모를 외주 하청업체 소속이다. 고객의 평가지표가 “매우만족”이 안 나오면 벌칙으로 임금이 깎이고, 아파트 지붕과 전신주를 넘나들면서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쯤 넘겼을 것이다. 하청업체의 폐업과 재계약을 몇 번 거치는 동안 십수년 숙련공은 늘 신입사원으로 기록되며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구조조정이니 계약해지니 하는 낯선 이유들로 순식간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케이블TV뿐 아니라 통신업계 노동자들 상당수가 겪는 문제다.


문제는 원청이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손쉽게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투기자본이 십수 년씩 일해온 사람들을 ‘정리’하고 회사를 비싼 값에 되파는 일도 흔하다. 씨앤엠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중첩돼 있다. 약자에게 가혹한 경제의 가장 심각한 두 가지 단면이 여기에서 교차하는 것이다.


긴 세월 주말을 반납해가며 6, 70시간씩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식으로 해고를 당한다면 누구든 울컥하고 울분을 느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일상을 되찾을 아무 방법이 없어서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게 된다. 머리에 빨간 띠를 묶고 투쟁가를 부르면서 말이다. ‘연대투쟁’이니 ‘점거농성’이니 하는 단어들이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의 국가는 자본의 재산권을 지켜주는 일에만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