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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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는 피해자다

도도 프로필 사진 도도 2016년 05월 26일

중심의 변두리에서

이 이야기는 불편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언론사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이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언론사의 여러 기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원하지 않아도 이따금씩 그들의 기사를 보고 들을 때마다 뭐라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든 마음이 올라온다. 그 회사의 이름이나 가해자, 2차 가해자의 이름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일은 그만큼 견디기 어려웠다.


성범죄를 바라보는 언론사 내부의 시각은 천차만별이었다. 관련 기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가지만 그들이 기사를 어떻게 내는지가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기자들은 가해자에게 분노하는가 하면,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지 않냐는 말을 농담처럼 흘리기도 했다. 굳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들의 의견은 처음에는 알기 어려웠지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 역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성범죄 기사를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를 피해자로 만든 가해자였다. 내가 보고 듣고 믿었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나름대로 언론인에 대해 높은 도덕 수준을 기대했던 것이 부서지는 과정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는 단순히 이상과 기대치가 현실과 다를 때 느끼는 괴리감을 넘어섰다. 그보다는 좀 더 기저에 자리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가해자들과 현재까지 조직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끝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피해자인 나에게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 처음 이 일을 겪고서는 망각의 동물답게 시간이 지나면 잊을 줄 알았다. 다른 경험들을 하면 지나간 괴로움은 잊히겠거니 생각했다.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는 데만 몇 년이 걸렸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이 일을 잊기를 포기했다. 이렇게까지 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실제로 긴 시간을 사용했으며 많은 대화를 하고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결코 즐거웠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일이 내 마음에 박혀 아직까지도 뽑혀 나가지 않은 채 나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며, 한국에서 지내는 내가 현실적으로 이 회사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고통 받았던 이야기고 가해자와 방관하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과 두려움, 환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할 길고 불편한 이야기는 외로운 싸움에 대한 것이다. 나 외에 이미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기록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다룬다. 이 이야기가 기록되기를 바란 사람도 적을 것이고 심지어 공개되기를 바란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수일 것이다. 여기서는 사건의 해결 및 처리 과정, 사건 가운데 놓인 사람들과 사건 당사자들의 생각, 이를 둘러싼 조직과 사회, 그들이 서로 끼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 이야기는 이미 몇 년 전에 시작되었다. 어느새 그 때를 기점으로 일어난 몇 가지 일에 대해 말해도 될 만큼 자료가 쌓였다. 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이 일에는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 나는 관련자의 신원 정보나 회사명을 공개할 생각이 없다. 구별이 필요할 경우 이니셜을 사용하려 한다.


나는 사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을 다루는 데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 이슈에 대해 나 스스로가 편향된 입장에 있다. 나는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있고 피해자 주변인으로서의 상황도 겪었다. 또한 나는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 하나를 위해 1년여를 소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가해자의 입장에 놓일 일이 없었으며 가해자 인터뷰이를 구하는 것은 피해자 인터뷰이를 구하는 것에 비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노력과는 별개로 이해에 어느 정도나 도달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