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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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밥

도도 프로필 사진 도도 2016년 06월 10일

중심의 변두리에서

가해자 X의 심리상태를 고려해 이 문제를 접고 넘어가겠다고 X에게 말하고 네 달여가 지났다. 나는 이 일이 처음부터 범죄라고는 의식했지만, 나와 X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풀 수 있었으면 했다. 어떻게든 사과를 받고 싶었고 일을 확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X가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가해와 피해 상황을 이해하는데 몇 달, X에게 이 사실을 납득시키기까지 몇 달, 그냥 넘어가려고 하다가 다시 이 일을 도마 위로 올리겠다고 결정하기까지 또 몇 달을 썼다.

나는 X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있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다니려고 노력하다가도 X를 지나쳐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다운되었다. 최대한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고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X의 자리 근처를 지나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내 회복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이 기간은 내가 이 사건을 꿈에서 숱하게 리플레이하며 과연 지옥의 끝이 있는지 탐색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악몽도, 스트레스도 끝나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든 가해자 X의 사과를 받기로 했다.

나는 피해 후유증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입장을 번복해 X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전까지도 나타났던 패턴이다. X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면 나는 계속 얘기하자고 하고, X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피해 다녔다.

이해는 간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것도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데 피해자가 이에 대한 대화를 요구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가해자인지 X가 가해자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책임이라는 빚을 받아내려고 계속 X를 따라다니는 상황. 나중에는 내 쪽에서 매달리고 구걸하는 느낌까지 들어 비참했다.

견디다 못해 나는 X의 상급자 D에게 이 일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그 상급자 D는 즉시로 X를 불러 나에게 사과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곧 X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도움을 청한 데 대해 상급자 D가 나를 도와준 셈이지만, 이는 내게 충분히 기분 나쁜 상황이었다. 내가 어렵게 시도해도 안 풀리던 일들이 D의 말 한마디에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X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처음에 그 일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X는 기억이 나지 않는 일에 대해 사과할 수는 없고, 만약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기분이 나아질 리 만무했다. 분명히 겪은 일에 돌아온 것은 조건부 사과였다.

X도 혼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X의 말 가운데 모순되는 말이 너무나 많았다. 자신이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럴 것 같으면 뭐하러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가능했을 공간에서 그랬겠냐고 하고, 술에 대한 의견도 술에 취해서 있었던 일은 보통 술김에 일어난 일이니 잊는다고 했다가 술김에 사람이 더 솔직해진다고 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X는 자신이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처음 주장을 유지했다. 블랙아웃을 믿기로 한 이상 나는 필름이 끊겼다는 X에게 무엇에 대해 사과를 받고자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에 했던 간략한 이야기에 덧붙여 겪은 일의 길고 자세한 상황과 그 기억이 내게 얼마나 끔찍하게 남아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서 나는 개입되었던 증인들의 이름도 알려줬다. 이 이야기를 어렵게 마치고 나니 X는 한 시간여를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심했던 모양이라고, 미안하다고, 사건 당시 자신이 했던 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으며 왜 그랬는지 모르겠고,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나 현재 자신이나 둘 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이 일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면 사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X에게 전체 상황을 알려준 것이 X의 변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일을 철저히 개인적으로 풀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를 알고도 진행했다. X는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왔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더는 이 일로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별일 없이 지내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악몽은 끝나지 않았고, X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에는 그에 앞서 해결할 선결 과제가 너무 많았다. X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기 어려워했고 만약 내가 처벌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을 풀어간다면 X는 잃을 것이 많았다. 자기부정의 어려움과 생존에 대한 생각을 버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지만, 진솔하기보다는 어딘가 거리를 둔 듯한 조건부 사과에 크게 실망했다.

X는 사회적인 후폭풍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자신을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기억조차 없었으니 혼란이 컸을 것이다. 나는 X가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을 도와주면 X의 진솔한 사과를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여기에 또 석 달 이상을 쏟아부었다. 내 생각에 X는 내게 사과할 의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과를 받고도 이 일로 인한 기억과 감정에서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았으며, 사과의 의도가 나의 회복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만 입을 다물면 이 사건은 더 이상 X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X에게는 나에 대한 미안함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에 앞선 감정은 X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나나 X 모두 이 일에서 벗어나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상급자 D의 연락 이후로 X의 비협조적이었던 태도가 약간 협조적으로 변했지만, 어쨌든 나나 X는 둘 다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총체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X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차마 스스로 인정하기 두려워했다. 다른 사람, 즉 내가 말하는 X의 모습이 X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았던 셈이다. X는 자기 기준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어야 했다.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 X에게 지속적으로 상황을 풀어나갈 것을 제안하는 것도 특이한 상황이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침잠한 채 하루하루를 버텼고 X의 진솔한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깨진 내 세상을 복원하는데도, X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도 X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기에 매달려 많은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

이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나도 지쳐갔다. 내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X 역시 이 상황이 내가 옭아매려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X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솔한 사과를 받겠다는 내 생각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꿈에 불과했고, 내가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X는 끝내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 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얼마나 조용히 사라졌는지를 꾸준히 들었고 처리 규정을 알아보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겪는 성폭력 피해와 수습 사례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피해와 가해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역시 직업적 생명이 끝나버린 이야기. 피해자만 그만둔 이야기들은 남았다.

적어도 피해자만 남은 케이스는 하나도 접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 경우는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지, 나와 다를 것 없는 다른 피해자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아직 공론화가 되지 않은 단계에서도 나는 내가 이후 취하는 결정 하나하나가 이 분야에서 더 일하는 것을 막아 버릴까 봐 우려했다.

나는 이런 일들도 봤고 해서 참고 참다가 용서할 명분이 없더라도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명시적으로 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나도 스스로 한 말에 대해 책임감이 남을 것으로 생각해 X가 있던 사무실로 찾아가 따로 불러내려 했다. 그런데 X는 퇴근해야하니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겠다며 회피했다.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처음부터 내가 더는 아무렇지 않아 용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X가 도의적으로나 감정적인 선에서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X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어떻게든 문제 제기 하려고 했다.

나는 몇몇 직원들과 X까지 포함해 이 일에서 벗어나고자 몇 달간 도움을 요청했다.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했다. 나는 사건 이후부터 이 시점까지 몇 달간 24시간 내내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회복은 요원했다.

X의 사과는 내 마음을 푸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 일로부터 벗어나는 게 우선적인 목적이었고 나중에는 그조차 불성실했다. 내가 어차피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없고 X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가 사회적으로라도 책임을 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X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면, 설령 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는 X에게 책임을 물을 명분이 없어진다.

X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묻기로 결정하고 문제 제기하는 방법에 대해 주위에 조언을 구했을 때 감사실을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사실을 통해 문제 삼기를 원하는 심리에는 대강 두 가지가 포함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하나는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회사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 직원에게 신원 조회 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직원을 전과자로 만드는 일을 피하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회사 감사실에 알릴까 했다. 이즈음 벌어진 다른 사건의 주인공을 내가 알지 못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 한 명이 다른 기자에게 몇 달간 심각한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일이 드러났다. 피해 직원은 감사실에 이 사실을 알렸다.

휴대전화로 그런 일이 주로 벌어졌기 때문에 증거를 완벽하게 확보해 감사실에 같이 넘겼다. 피해 직원은 감사 담당 직원을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표현했지만, 감사과정에서 이 일은 온 회사에 다 퍼졌다. 회사 구조상 어떤 일을 혼자 처리하고 그 일이 상부에 보고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가해자였던 그 기자에게 피해를 당한 직원은 한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수의 피해자는 각자의 이유로 피해 내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용기를 낸 피해 직원은 끝내 단 한 명이었다. 이 경우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명확해 가해 직원으로서는 다퉈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해자의 최후 변론은, 자신은 아이가 있고 집에 대출이 걸려있어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해자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가해 직원은 피해 직원의 피해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만 고려했다.

명확한 가해 사실, 가해자가 징계위에서 보인 태도가 회사에 모두 알려졌음에도 사내 여론은 가해자였던 기자에게 기울어 있었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논리는 죄는 미워도 밥줄까지 끊어야겠느냐는 것이었다. 피해 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불려 다니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피해 직원이 원한 것은 가해자였던 기자의 해임이었지만, 해임하자는 여론은 겉으로 드러나지를 않아 유기정직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 이야기에 피해자의 입장은 아예 없다. 자신의 가해 사실로 인해 처벌이라는 이름의 피해를 당할지 모르는 가해자가 있을 뿐이다. 피해 직원은 현재까지도 해당 회사에서 가해자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나는 온 회사가 내 피해 사실을 놓고 떠드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론이 피해자인 나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을 것임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회사 내 감사실을 포기하고 외부 기관을 찾았다. 경찰서를 찾고서도,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마음의 결정을 완전히 내리지는 못했다. 감사실을 선택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고 감사실을 포기했지만, 경찰 고소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경찰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까지 온 김에 고소하고 가란다. 이렇게 가볍게도 말할 수 있었나 싶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은 이끌려가듯 고소장을 접수했다. 나는 이 일을 몇 달 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서 경찰서에서 진술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했는데, 2시간을 진술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 조사를 마치고서는 숨 쉬는 것이 버겁다고 느낄 정도였고 조사 후에도 한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다.

조사를 받던 나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그 당시의 심정을 기억하는데 살면서 이때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되짚어보면 그걸 다 토해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조사받으면서 사건에 대한 질문은 어떤 것이든 대답을 할 수 있었지만, 전체를 완벽하게 그려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사건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와 감정이 올라오는데 조사 과정에서 마음이 부서지는 것까지 전부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서 작성 과정에서 이 일을 뿌리째 드러내는 게 힘이 들었다. 경찰서를 나온 다음에도 워낙 스트레스가 심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일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고소하기 전에도 이 일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고소하면서는 이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되새겨 말로 정리해야 했으며 고소한 후에는 이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이 일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는데 여기서 피할 방법이 세상을 떠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를 나온 후 어디든 피아노가 있는 곳을 찾았다. 심심치 않게 연습실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는데, 그렇게 그랜드 피아노 연습실에 가서 정신없이 두어 시간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있다. 자살하고 싶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이고 입 밖에 낸 적이 없었음에도 주위 사람들은 나의 위태위태한 상태에 대해 상당히 감지했다. 여러 사람이 내가 자살할까봐 우려했고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할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소를 취하하라던 사람도 있었다.

고소를 결정하면서 나는 스스로 경력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이전까지 내부에서 여러 사례를 보고 들었고 관련 서적도 찾을 수 있는 만큼 찾아 읽었지만, 나만큼 일을 크게 만든 케이스는 책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이보다 작은 일로도 내쳐지고 보호받지 못하는 일을 여럿 봤는데 직원을 공격하고도 살아남겠다는 꿈을 꾸기에는 이곳에서 현실을 너무 많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