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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안 보고 리뷰 기사 쓰기

도도 프로필 사진 도도 2014년 12월 31일

중심의 변두리에서

네티즌에게 가장 질타 받는 기사 중 하나가 방송 리뷰다. TV 보고 방송 내용 그대로 받아쓰는 걸 누가 못하냐는 거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이미 전파를 타 아무나 볼 수 있는 방송의 몇 장면을 캡처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정리한다. 방송 전체를 요약할 필요도 없다. 기사의 마지막은 존재하지도 않는 네티즌 반응으로 마무리된다.

네티즌들은 아무나 작성할 수 있는 시덥잖은 기사를 왜 쓰냐는 부분을 지적하지만 내부적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가끔 포털을 통해 전날 보고 싶었지만 미처 못 본 방송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방송 리뷰 기사를 찾아본 적이 있다. 캡처 영상과 연예인의 주요 발언으로 된 기사를 보면 대강 방송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기사도 시청률 하락에 한 몫 할 것 같다. 방송이 끝나고 수 분 내로 기사가 다 올라오는데 굳이 방송을 봐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70~90분 방송을 하는데 방송 리뷰 기사를 몇 개 찾아 읽는데는 5분도 안 걸린다.

방송 리뷰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 그 방송을 본 기자는 없다. 즉 방송을 보지도 않고 리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타사의 기사를 긁어오면 된다. 캡처 영상도 타사의 이미지 파일을 그대로 올린다. 나는 이런 기사를 주로 내보내는 언론사라면 최소한 전날 방송을 볼 수 있는 시스템 정도는 갖춰져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타사가 뭐 하나 잘못된 정보를 올리면 역시 그대로 베낄 수밖에 없다. 방송을 안 봐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수정하지도 못한다.

캡처까지는 못해도 방송 시간에 방송을 보고 나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 방송도 안 본 기자가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에 어뷰징 기사를 수십 개씩 썼지만 작성한 기사의 소재가 된 방송 가운데 내가 본 방송은 없었다. 나는 기사를 위해 방송까지 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최저시급을 받고 일했다. 방송을 보고 기사를 작성하면 방송을 보는 시간은 사실상 시간 외 업무가 된다. 나는 시간 외 수당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사용사업주는 연예와 스포츠에 미쳐 무슨 일을 시켜도 해낼 사람을 원했지만 나는 열의라는 명분으로 착취당하고 싶지 않았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지불할 생각도 안하는데다 그에 대한 미안함도 없는 조직을 위해 무보수 노동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런 경우는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라디오스타 특집을 했을 때 무한도전 팀이 라디오 방송을 목요일에 했다. 업무 시간에 방송을 했기 때문에 이 때는 이어폰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방송 시간대는 어뷰징 팀의 업무 시간과 맞지 않았고 설령 맞았다고 해도 방송을 편하게 보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내 앞에 제법 큰 TV가 있었는데 나와 TV 사이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너 명 있었다. 아무리 연예와 스포츠 기사를 다루는 회사라고 해도 예능 프로그램의 볼륨을 높이고 낄낄대며 일할 여건은 되지 않았다. 흥미 위주의 재미있는 소재를 다루니 즐거울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개는 침묵 속에서 컴퓨터만 바라보며 일했다.

TV 방송 리뷰를 올리는 언론사 가운데 몇 군데는 캡처 장비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나름대로 기사의 주제를 잡고 영상도 기사를 뒷받침할 수 있게 제대로 캡처한다. 그러나 이런 곳은 몇 되지 않고 대다수는 그런 언론사들이 기사를 올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대로 영상 이미지 파일을 가져오고 기사도 긁어 올린다. 또는 방송사가 보낸 보도자료에 포함된 이미지를 사용한다.

방송 리뷰 기사로 독자 입장에서 방송을 볼 시간은 절약되겠지만 그 정보가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분석을 거쳐 나온 기사이리라는 생각은 버리기 바란다. 어뷰징 담당자는 전문적인 분석을 할 시간이 없다. 독자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도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결국 타사의 기사와 영상 이미지를 가져온다.

어제 방송을 못 봤지만 그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차라리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갈 것을 권한다. 아니면 방송을 봤다는 친지나 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방송 리뷰를 올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방송을 본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