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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장행훈 프로필 사진 장행훈 2015년 07월 13일

언론광장 대표

국회법 개정을 놓고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국회 원내대표 간 갈등 후유증으로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드러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정국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고 국회법을 개정했다는 죄(?)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친박(친 박근혜)세력을 통해 끈덕진 압력을 가해서 그가 8일 마침내 원내대표 자리를 사퇴하게 한 것이다. 행정부의 시행령 내용이 본 법의 취지에 어긋날 때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개정법이 3권분립의 원칙에 저촉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입법부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요하는 권력분립 위반행위를 주도했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월권이었다. 대통령이 원내대표에게 질 수 없다는 권력의 논리에 법이 졌고 박근혜, 친박, 보수우익 언론의 합동작전에 유승민은 원내대표직을 부득이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였다.


그러나 유승민이 완전히 진 싸움도 아니었다. 내일신문에 의하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사퇴를 발표한 직후인 8, 9일 이틀간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차기 여권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19.2%로 1위를 차지했다. 6월 말 조사에서는 5.4%를 얻어 4위에 그쳤었다. 불과 20여 일 만에 13.8% 급등하면서 유승민이 처음으로 여권 대선주자의 정상에 올라섰다. 박근혜, 친박의 부당한 압력에 분노한 여론이 유승민에게 지지를 보낸 결과였다.


6월 말 조사에서 20.2%로 정상을 차지했던 김무성 당 대표는 이번 조사에서는 18.8%로 하락해서 2위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유승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박해(?)를 받은 덕에 일약 미래권력 후보로 부상했다. 6월 조사가 김 대표의 ‘1강 다(多)약체’였다면 7월 조사는 유승민이 김무성과 함께 선두권을 형성하는 ‘2강 다약체’로 바뀐 셈이다.


유승민은 대구 · 경북(26.3%)과 광주 · 전라(27.7%), 대전 · 충청(23.9%)에서 1위를 차지했고 경기 · 인천과 서울, 부산 · 경남 · 울산에서는 2위였다. 30~40대에서는 압도적 1위였지만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무당층(22.6%), 중도층(25.3%), 진보층(29.4%)에서는 1위였으나 보수층(8.6%)에서는 김 대표(35.5%)에게 크게 뒤졌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가 “여당 내 야당 역할이 부각되면서 야당 지지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며 “대구 · 경북에서는 1위를 차지한 박 대통령이라는 현재 권력이 있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미래권력이라는 측면이 부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지지율은 당분간 유지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다만 당 · 청 지지율이 떨어지면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여론이 나타나면서 다시 지지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유승민 파동에서 누구보다 타격을 입은 것은 김무성 대표로 보인다. 자업자득이다. 김 대표는 유승민과 마찬가지로 원조 친박인 동시에 비박 리더로서 그동안 유승민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를 운영해 왔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제거할 의지를 드러내자 “대통령에게 이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상식의 논리로 청와대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현재 권력의 후계자가 되려면 박근혜에게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작년 개헌 필요성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의 반응이 좋지 않자 금방 꼬리를 내렸던 것과 같은 행동이다. 당대표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한번 해본 소리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이번 유승민 파동을 겪으면서 김무성의 그릇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돌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김무성이 유승민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것이 바로 그런 여론을 반영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대권을 위해서 유승민을 일시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나 유승민 다음은 김무성이라는 세간의 소리를 귀전으로 흘려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유승민을 버리고, 국회를 청와대의 출장소로 만들고, 스스로 유신 시대의 유정회 회원을 감수한 새누리당 선량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지엄한 가치”를 망각하고 대통령에게 충성을 보인 행동이 역사에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8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지난 16년간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면서 매일 생각했던 고민과 다짐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기자회견을 본 많은 국민에게 박근혜 정권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 동시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는 경건한 다짐으로 들려 큰 감동을 주었다.


※ 다음은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기자회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큽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아침 여의도에 오는 길에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거듭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되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저와 꿈을 같이 꾸고 뜻을 같이 해주신 국민들, 당원 동지들,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