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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러시아 국정 역사교과서

장행훈 프로필 사진 장행훈 2015년 11월 25일

언론광장 대표

박근혜 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모델?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 드문 나라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있다. 푸틴 대통령이 단일 역사 교과서(국정화) 결정을 발표한 것이 2013년 11월이다. 박근혜 정부보다 2년 앞섰다. 시간상으로 앞선 데 그치지 않고, 그 동기나 목적이 박근혜의 국정화와 아주 유사하다. 따라서 푸틴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가해지고 있는 비판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화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푸틴의 역사 교과서 단일화는 마치 박근혜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모델로 보아도 될 것 같은 인상이다. 푸틴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과 비판이 박 정권의 국정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예감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추진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미리 가늠하는 데 참고할 생각으로 푸틴의 여사 교과서 추진 과정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로이터 통신의 러시아 문제 전문가 가브리엘라 바쉰스카에 의하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새 역사 교과서 발상을 공개한 것이 2013년 2월이었다. 푸틴은 러시아의 과거를 돌아보는 역사 교과서가 너무 다양해서 혼란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역사학자들에게 러시아와 소련 역사에서 일어난 많은 어려운 사건들에 대한 통일된 인식을 제공해 줄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한 지침을 만들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스탈린 같은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가 싫어했던 정적들은 그 사진을 붓으로 지워버리고 역사를 정치적 무기로 다뤘다. 이런 국가에서 통일된 역사관을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푸틴은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역사를 가르칠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 지침을 역사학자들에게 요구했다. 푸틴이 선발한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만든 지침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넣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지침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국가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국정화다.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싫어할 것이 빤한 사항을 지침에 넣은들 그가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걸 알면서 지침에 올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국정화는 러시아 야당 역사학자가 지적한 대로 푸틴의 역사를 만드는 작업이지 국민을 위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 내용을 쓸 역사학자가 누구보다 잘 안다. 필자나 편집자는 대통령이 선발한다.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야당 출신 하원의원을 지낸 역사학자 블라디미르 르이슈코프도 정치판에서는 집권층을 정당화하고 그들은 항상 옳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푸틴이 임명한 역사학자들이 작성한 80페이지 지침 보고서에도 푸틴이 3선을 노린 2012년 대선에서 일어난 부정선거 항의 대회나 야당 탄압을 어떻게 다루라는 지침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전통적 역사 서술에 관한 종래의 지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푸틴 비판자들은 역사를 대중을 조종하는 수단으로서 보는 점에서 그가 스탈린과 다를 게 없다는 불만의 소리를 냈다. 실제로 2013년 가을에 학생들에게 배포된 <새 러시아 역사 교과서>에 악명 높은 폭군 이반 대제가 “개혁주의자”로, 스탈린이 “근대화의 지도자”로 소개됐고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민주적 업적은 무시돼 있으며 푸틴은 러시아의 위대성을 회복한 영웅으로 부각돼 있다.


루이슈코프는 푸틴이 말하는 역사의 소위 '신 개념'이 이전 시기로 역사관을 후퇴시켜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했다고 비판한다. '신 개념'은 1917년 이전 차르시대의 역사관과 소련시대의 역사를 엉클어뜨린 것이다. 차르와 공산당 서기관들의 행적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깨어있는 독재자' 였다고 뭉뚱그려 기록했다. 이들이 국민 생활 개선, 경제 발전, 개인 자유 신장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국력을 강화하고 신장한 것만을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했다는 게 루이슈코프의 지적이다.


그러므로 새 역사 교과서는, “러시아 역사를 설명하는 신 개념”을 적용했다는 정권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고도로 정치화됐고 역사적 사실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르이슈코프는 지적했다. 그는 차르나 소련 지도자들의 이익에 봉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교과서처럼 푸틴의 새 교과서도 푸틴과 그의 측근들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진리부(2중 언어로 국민을 속이고 세뇌하는 임무를 띤 정부 선전부)에서나 제작될 수 있는 교과서라고 풍자했다.


이상으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2년째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과정을 살펴봤다. 한 마디로 실패하고 있는 실험이다.역사의 국정화가 진정으로 국민에게 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선전수단이라는 것을 결국 국민들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 민주적 행동이라는 것을 유엔총회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 새누리 정권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빨리 위헌적 국정화를 중단해야 한다. 민주화에 평생을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잘못을 철회하고 중단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