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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우기는 오기는 그만

장행훈 프로필 사진 장행훈 2016년 08월 18일

언론광장 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낭독한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가 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경축사 서두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한 것이 말싸움의 불씨였다. 지금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걸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나라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 다수 국민이 비판하는 국경일 명칭을 놓고 국민들이 입씨름을 벌이도록 불을 붙인 박근혜 대통령의 양식을 의심하게 한다.


지금 세계에서 건국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프랑스 같은 나라 이름은 공식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 1천1백년 정도 되지만 프랑스인들이 건국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프랑스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혁명일(프랑스혁명일)을 최고의 국경일로 기념한다. 그러나 혁명 이후 새로 세워진 나라들이 건국일을 국경일로 정하느니 마느니 논쟁을 벌였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건국일을 공식으로 지정하는 것이 국가에 꼭 좋은 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가도 사람과 비슷하다. 다른 국가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국가가 망해 없어지거나 새로 건국하는 국가가 생기면 간단치 않은 국가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건국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국절”을 공식화하면 책임 문제도 공식으로 불거진다. 건국절 지정을 신중히 하는 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지금 대한민국 우파들이 주장하는 건국절은 이전의 국가 관계를 단절하고 건국을 강조해서 오히려 중대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이 무리하게 우리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역대 왕조의 지배 관계를 제시하며 영유권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이 새로 나라를 세운 건국절로 지정하면 한국이 독도에 대한 역사적 법적 지배 기록을 통한 영유권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정부가 이런 문제까지 검토했는지 모르겠다.


광복절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아 독립한 것은 임시정부의 독립투쟁을 통한 결과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됐고 카이로선언을 통해 미.영.중연합국이 한국의 “광복”이 정당함을 입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건국의 공로를 내세워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우익세력들이 친일의 죄과를 가리고 권력을 거머쥐는 수단으로 건국절을 고안해 주장하고 있다. 불법선거의 약점과 경제정책 사회정책 외교의 실패로 수세에 몰린 박근혜 정권이 건국절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도 같다고 본다.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앞서 지적한 함정들이 깔려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호칭했다가 여론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자 다음 해에는 건국절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역사관이 바뀐 건 아니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 연거푸 건국절을 광복절 다음에 슬며시 붙이고 있다. 떳떳지 못한 간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여론이 이를 간파하고 분노하고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석상에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이 직접 대통령에게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의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해 긴장감이 감돌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에 대통령의 건국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를 기대했었지만 그건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곧 패배로 인식하는 박근혜를 잘 모르는 오판이었다.


우리 선조들의 광복운동은 임시정부와 독립투사들의 각고의 부단한 애국운동이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에서 발족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1919.4.11.)을 제정 선포했다.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해 9월11일 반포된 총 58조의 대한민국 임시헌법은 제1조에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음, 제3조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舊)한국의 판도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관해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 문제가 없다.


건국절로는 통일문제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는 8.15 광복과 동시에 남북으로 분단됐다. 한반도에 두 국가가 "건국"했다. 임시정부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 한국의 판도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헌법 4조의 통일조항을 뒷받침하는 데 문제가 없다.


지금 북한은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한민국과 한 나라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이질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평화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 비현실적이고 위헌적인 건국절 망상부터 버려야 한다.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1943년 11월 27일 미.영.중 정상이 채택한 카이로선언이 천명한 대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아 진정한 광복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돼 독립을 되찾는 데는 임시정부의 활약을 간과할 수 없다. 8.15 광복절은 임시정부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해서 얻은 민족적 성과다. 박근혜가 “건국절”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행동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자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권력욕에 눈이 가려 독재자로 변신했다. 대한민국 수립 후 부정선거로 정권을 유지하고 결국 3.15부정선거를 저질러 이에 분노한 학생들의 4.19혁명으로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아무리 애국자라도 국민에 의해 축출된 인물을 대한민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추켜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의 심판은 냉엄한 것이다.


박근혜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사(史)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승만의 참담한 최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수가 아니라 고통받는 다수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좀 더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