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가 반갑지 않은 이유

최광희 프로필 사진 최광희 2015년 04월 03일

영화평론가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게 한국 관객들의 몰려가기 심리가 좀 심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하시더군요. 그런 지적이 무리도 아닌 게, 지난해 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영화가 네 편이나 나온 걸 보면 문화적 쏠림 현상이 확실히 심해진 건 사실입니다. 아마도 1년에 천만 이상을 동원하는 영화가 네 편씩 나오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국 관객들의 영화 사랑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대세에서 이탈하는 걸 두려워하는 군중 심리의 결과라고 해석합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한국의 문화적 지형은 특히나 몰려가는 현상이 뚜렷한 게 사실이니까요. 옷만 해도 그렇습니다. 스키니 진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스키니 진을 입습니다. 아웃도어 복장은 중년들의 일상복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해외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식별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 아웃도어 옷을 입었느냐 여부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영화의 몰려가기 현상도 그런 대세 이탈 기피 심리로 설명한다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천만 영화를 안 보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요? 저는 더 근원적인 배경을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환경이 변화하면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교정합니다. 문화도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화적 환경이 변화하면 관객도 그 환경에 적응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적지 않은 관객들이 거주지 주변의 멀티플렉스를 이용하는 영화 관람 행태에 적응해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시내 중심지에 몰려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을 애써 찾아가는 관객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스크린 독과점 환경은, 특정 영화가 물량 공세를 통해 이른바 대세 효과를 만들어내기에 유리한 배경이 되어줍니다. 대기업이 자사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도배하다시피 하면, 관객들은 그 영화가 현재 대세 영화라는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하게 됩니다. 구매라는 행위를 통해 관객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관객이 배급과 마케팅 물량을 퍼부은 영화에 의해 선택되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더라도, 시간대가 맞지 않거나 금세 종영해 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대세 효과에 편승하려는 심리가 강해집니다. 멀티플렉스는, 관객들의 능동성을 차단하는 방향의 편성을 반복하고, 관객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나브로 수동적이 됩니다. 천만 영화는 따라서, 사실상 관객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독과점 환경에 관객들이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관객들이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게 척박함에 적응하는 것이지, 풍요로움에 적응하는 게 아이라는 겁니다. 다양성이 확장되는 방향성과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만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들은 멀티플렉스 체인을 가진 대기업의 흥행 논리에 굴종할 것이며, 그들이 만든 독과점 환경이 부메랑이 돼 흥행 위험도가 높아집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영화의 투자수익률은, <명량>과 <국제시장> 두 편의 천만 영화에도 불구하고 곤두박질쳤습니다. 극소수의 대박 영화와 다수의 쪽박 영화로 시장이 양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선 더욱 안전하고 더욱 뻔한 영화만 양산됩니다. 제작자들이 모험을 꺼리게 됩니다. 그러면 관객들이 외면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대세를 기다리게 됩니다. 당장 올 초부터 3월까지의 한국영화 부진이 그 방증입니다. 한 편의 대박을 피우기 위해 영화사도 극장도 관객도 계속 쪽박을 만들어내며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천만 영화가 나오는 게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